뙤약볕이 내리쬐는 한여름 선풍기와 에어컨의 냉방시설이 없던 옛날에는 어떻게 여름을 지냈을까? 농경사회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에게는 휴가라는 개념이 희박했다.

휴가란 말은 중국 한나라에서는 휴목(休沐)이라 해 관료들에게 5일에 한 번, 당나라 때에는 10일에 하루씩 집에서 쉬며 목욕할 수 있도록 배려한데서 유래했다.

석가도 ‘고(苦)를 내려 놓으라’ 했고 예수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들아! 다 나에게 와서 편히 쉬라고’ 했듯이 종교에서도 휴가를 통한 자기개발과 경쟁력을 키우는 휴 테크(休Tech)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본래 휴가(休暇)의 ‘休’자는 나무(木)에 사람(人)이 기대있는 모습이다.

우리 조상들은 날이 더우면 나무그늘 아래서 매미 소리를 벗 삼아 부채질하며 우물 속 깊은 곳에 냉장시킨 참외나 수박 등을 이웃들과 나눠 먹는 것이 유일한 피서였다.

예의를 중시했던 시절 신분과 체면 때문에 저녁 무렵에 등목이나 멱을 감는 것도 남성들의 특권이었고 여성들은 달밤에 여럿이 어울려 시냇가에서 남이 볼까 가슴 조이며 멱을 감았다.

그러나 개구쟁이 아이들은 냇가에서 개구리 수영과 물고기를 잡으며 더위를 식혔다.

선비들은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 물속에 발을 담그고 시를 지어 낭송하는 탁족회(濯足會)를 통해 낭만적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

고려 명종 때의 시인 이인로(李仁老)는 ‘홍도정부(紅挑井賦)’에서 탁족(濯足)에 대해 “얇은 오사모(烏紗帽·옛날 관원들의 모자)를 뒤로 제껴 쓰고 용죽장(龍竹杖·대나무 뿌리로 만든 지팡이) 손에 집고 돌 위에 앉아서 두 다리 드러내어 발을 담근다. 그 시원한 물을 입에 머금고 쭉 뿜어내면 불같은 더위가 저만치 도망을 가고 먼지 묻은 갓끈도 씻어낸다. 휘파람 불며 돌아와 시냇바람 설렁설렁하면 여덟자 대자리에 나무베개를 베고 누워… 내 발을 씻으리” 라고 표현했다.

또한 선비들은 좋은 날을 잡아 국화전, 국화주를 빚어 들고 산에 올라 상투머리를 풀어 바람으로 빗질하며 날리는 즐풍(櫛風)과 바지를 벗고 연중 응달에 갇혀 살았던 국부를 태양의 양기 앞에 노출시켜 바람을 쐬는 거풍(擧風)을 하는 등 숲을 이용한 삼림욕을 했다.

열대야가 심한 밤에는 약쑥으로 모기향을 피워 모기를 쫓고 시원한 모시옷을 입고 대자리에 누워 ‘마누라보다도 가볍고 시원한’ 죽부인으로 더위를 달래 냉방병 같은 고급 질병이 없었다. 그래도 더위를 먹으면 이열치열이라 해 천렵에서 잡은 붕어찜과 원기회복에는 인삼차를, 뜨거운 열을 내리는데 탁월한 금은화차(인동 덩굴의 꽃)와 같은 양생음식(養生飮食)을 음용함으로서 더위와 한 몸이 되는 자연의 섭리에 따랐다.

조선시대 조정에서는 관료들에게 오늘날의 안식년 제도를 둬 독서를 장려했다.

세종은 집현전의 젊은 학자들에게 휴가를 줘 집에서 책을 읽게 하는 사가독서(賜暇讀書) 제도를 시행했다.

정조는 규장각 각신들에게 유하정(流霞亭·본래는 제안대군의 정자였음)을 별장으로 하사하고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규장각 각신들에게 휴가를 줘 이곳에서 놀고 독서를 하게 해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하도록 북캉스(Book vacance)를 적극 지원했다.

특히 학자 군주였던 정조는 규장각에 초계문신(抄啓文臣) 제도를 창설한 이후 스스로 모범을 보이고자 무더위가 심할 때면 시간을 내 독서를 하면서 각신들에게 질문할 내용을 뽑아냈다고 한다. 그러면서 국왕이 공부하는 것에 대해 신하들에게는 “나는 독서가 취미다”라고 유머를 남기기도 했다.

동일시대인 19세기 영국에서도 빅토리아 여왕이 관료들에게 독서휴가제를 실시한 바 있다.

최근 이명박 대통령은 휴가 때 페이퍼 책 대신 전자책을 가져갔다고 하며 이미 고인이 된 김대중 대통령은 역대 그 어느 대통령보다 여름휴가 때 독서삼매에 들었었고 노무현 대통령은 감명 깊게 읽은 책의 저자를 발탁해 중용(重用)하기도 했다.

휴가철이라 해 각종 냉방기구의 가동으로 전력난과 휴양지를 찾는 것으로 경제에 부담이 되는 것보다 조상들의 현명한 여름나기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지구온난화로 갈수록 무더위가 심해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 도시화와 난개발 등으로 숲이 사라지고 있어 도심의 열기는 더욱 가속화돼 있어 인류의 건강을 위해 녹색도시 건설이 시급한 실정이다. 과학문명을 발전시키는 것도 좋지만 우주의 순리를 따르는 국가정책 개발은 물론 각자 웰빙의 마음가짐도 중요하다.

올 휴가는 더위와 당당히 맞서는 망서(忘暑)로 자연과 어울리며 책읽기(披書)나 예술관람 등 진정한 자신의 삶의 마디를 찾을 수 있는 재충전의 기회가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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