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7월, 핀란드의 작은 호숫가 마을 쿠모의 한 초등학교 강당에서 첼리스트 세포 키마넨과 바이올리니스트인 그의 아내, 그리고 두 명의 자녀가 소박한 연주회를 마련했다. 이날 음악회의 청중은 단 세 사람만이었다고 한다. 연주자보다 청중이 적었던 이날의 초라한 연주회가 오늘날 세계 10대 축제의 하나로 꼽히는 쿠모페스티벌의 시작이었다. 당시 청중의 숫자에 실망한 키마넨 가족이 이 음악회를 중도에 포기했더라면 인구 1만3천명의 이 작은 도시는 지금 아마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한적한 시골 마을로 남았을 것이다. 해마다 세계의 음악가들과 애호가들을 불러들이는 이 축제는 지난 30여 년 동안 참가 음악가와 청중의 규모, 콘서트의 횟수 등에 있어서 엄청난 성장을 이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변하지 않은 것들이 있다고 한다. 연주자를 초청할 때 상업주의에 영합해 인기를 누리는 스타들보다 진정한 음악가의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을 선택하는 등 흥행보다는 좋은 음악 만들기에 매진했던 첫 마음이다.

성격 없이 官 주도 실적 위주로 흘러

충북에도 크고 작은 지역문화축제가 시작됐다. 지역 특산물 잔치까지 각 시ㆍ군마다 서로 뒤질세라 앞 다퉈 축제를 준비하고 있다.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 지역축제가 많다는 것 자체를 흠잡을 수는 없다. 문제는 관 주도의 실적 위주로 흘러 축제의 성격을 살리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지역 사회와는 전혀 무관한 뿌리 없는 행사, 실속은 없고 포장만 근사한 행사가 적지 않다. 뜨내기 관광객들의 놀이판이나 장터로 전락한 행사가 부지기수다. 지자제 도입 이후 지역을 홍보하고 관광수익을 올려보자는 생각에 경쟁적으로 축제를 신설했다. 축제의 상차림을 봐도 아쉽기는 마찬가지다. 서로 베껴먹기를 하다 보니 내용이 천편일률적이어서 이름만 바꿔 달면 어느 축제가 어느 축제인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축제 중에는 함평 나비축제, 보성 다향제, 강진 청자문화제, 전북진안 마을축제 등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축제로 자리 잡은 것도 있지만 손꼽을 정도다.

지역축제가 난립하는 데는 자치단체장의 선심 행정도 한 몫을 한다. 지역 주민을 자연스럽게 동원할 수 있는 이벤트성 행사는 단체장의 치적 홍보와 얼굴 알리기의 주요 장이기 때문이다. 관 주도로 축제가 치러지다 보니 문화를 잘 모르는 공무원들과 행사를 기획한 전문가 집단 사이에 주도권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지기도 하고 축제가 끝난 뒤 적자가 발생해 지역 주민들에게 부담을 안긴 사례도 있다. 긴 세월에 걸쳐 자생적으로 형성된 외국의 지역축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외국의 경우 지역성이 없는 천편일률적인 축제, 자치단체장이 선거를 의식한 관 주도 형식의 축제, 억지 관객을 동원해 실적 부풀리기를 하는 경우는 눈 씻고 찾아보려 해도 없다. 지역 특성을 상징하는 정체성의 확보 없이 천편일률적인 유희성 행사로 전락한 구태의연한 축제는 지역민들에게는 축제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부에 보고한 문화관광축제만 300여 개에 이른다고 한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축제까지 따지면 3천여 개에 육박할 것이라고 한다. 문화관광부에 따르면 2006년 한 해 동안 전국 각지에서 열린 지역축제는 1천176개였다. 지역축제가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것은 1995년 지방자치제가 실시되면서부터다.

1천176개의 축제 중 64.8%인 763개가 1996년 이후 시작됐다는 것이다. 모든 축제는 주민들의 애향심을 고취시키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는 명분으로 생겨났다. 하지만 그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단체장들의 치적 쌓기 내지 생색내기용 축제가 많기 때문이다. 주민들에게 직접 뽑힌 시장, 군수들은 지역축제에 유독 신경을 쓴다. 축제에서 빛이 날 수록 자신의 치적이 높아진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축제의 성공 여부는 곧 단체장의 능력이 돼 버렸다. 주민들은 관(官)이 벌인 굿판에 끌려나온 구경꾼에 불과하다. 끝나면 남는 게 없다. 그것은 축제의 기본인 감사의 마음이 빠져 있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들러리에 그치기 때문이다. 축제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뺏으려 할 뿐 마음을 주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민들은 축제가 불편하다. 주민들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혈세가 드는 행사는 생활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불편만을 안겨줘 달가워하지 않다. 이 같은 사실은 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단체장 치적 홍보, 끼어들어선 안돼

한국지방행정연구원이 지난해 10월 실시한 ‘지방재정 지출에 대한 주민 만족도 조사’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의 축제들에 대해 주민 3명 중 1명은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지역축제의 경제 활성화 기여에 대해서도 부정적 의견이 30%를 넘었다. 지역 주민들이 주체가 되고 안팎의 전문가들이 보조하는, 판박이가 아닌 창의적 축제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 지역 만의 특색을 살리고 지역 구성원 모두의 뜻과 신명을 하나로 모아 축제의 장이 되도록 해야 한다. 행정기관에서 예산을 지원해야 움직이는 축제가 아니라 기꺼운 마음으로 참여하고 축제가 끝남과 동시에 다음이 기다려지는 축제가 돼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치적을 알리고 홍보하려는 단체장의 조급함이 끼어들어서는 결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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