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멀리 보라 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 합니다. 부모는 꿈을 가지라 하고, 학부모는 꿈 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참된 교육을 위한 캠페인 공익광고 카피다. 처음 이 말을 대했을 때 요즘 교육현장의 서글픔을 실감나게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와 학부모, 비록 동일체이지만 두 단어의 차이를 이 광고 카피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내 자식이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바르게 크는 것, 또 그런 사람이 성공하는 사회에서 키우고 싶은 게 모든 부모의 소망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순수한 부모로 사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자식이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검투사를 기르는 조련사로, 때론 자신이 직접 검투사로 나서야 한다. 선택권이 없다.

교육현장에서 모두 검투사 일색

교육의 중요성을 말할 때면 ‘백년대계(百年大計)’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백년대계의 사전적 의미는 ‘먼 앞날까지 미리 내다보고 세우는 크고 중요한 계획’이다. 이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을 우리나라 교육현장에서 그저 관행적으로 약방의 감초처럼 써도 괜찮을까. 우리나라의 대입제도 역사를 알면 뜨악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대학의 학생선발 방식은 광복 이후 최소 15차례 이상 바뀌었다. 평균 수명이 4년을 넘지 않는다. 바뀌지 않은 것은 수험생들의 입시지옥 뿐이다.

1945년 일제치하에서 해방되자 새로운 학제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교육기관의 증설이 시작됐지만 국민적 관심은 문맹퇴치에 집중돼 대학입학 전형에는 무관심했다. 그래서 모든 대학입시에 대한 전권을 각 대학이 쥐고 있었다. 이 때문에 무자격자의 입학허가, 부정입학 등의 문제가 발생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1954년 연합고사와 대학별 본고사가 도입됐는데 일부 권력층의 자녀가 연합고사에 탈락했다는 이유로 시행 원년에 백지화됐다. 대학의 부조리를 제거하고 신뢰성을 높일 수 있다는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입맛에 맞지 않은 것이 발단이 돼 퇴출된 것이다. 다시 나온 정책이 대학별 단독시험제와 무시험제(1955∼1961)인데 이 때 여자와 제대군인에 한해 정원의 10% 범위에서 초과모집이 허용되는 특별전형이 실시됐다.

5·16군사정부의 등장으로 두해살이 대입제도가 등장했다. ‘대학입학자격 국가고사’(1962∼1963)로 국가경제발전 기치 때문에 실업계고 출신이 특히 우대됐다. 이 때부터 대학 선발전형이 국가 통제에 놓이게 됐다. 결국 대학 자율성 침해 논란과 함께 교육기회균등 원칙에 위배된다는 여론으로 1964년 대학별 단독고사제로 전환됐다. 정부는 최소한의 지침만 마련했지만 일부 대학에서 매년 입시과목을 변경하는 바람에 진학지도 및 입시준비에 많은 혼란을 초래했다. 이는 결국 입시과목 위주로 교육하는 학교 교육 비정상화의 시발점이 됐으며 이른바 일류대학 집중화에 따른 학벌주의 형성의 사회적 토대가 됐다.

그래서 또 바뀌었다. 예비고사와 대학별 고사를 병행하는 입시제도가 등장한 것이다. 예비고사에 합격해야 각 대학별 본고사 응시자격이 주어졌는데 국어, 영어, 수학 중심의 대학별 본고사 과목 채택은 과외 열풍을 일으켰다. 12·12사태로 정권이 또 바뀌자 1980년 최대 고교내신성적을 50%까지 반영하는 새 대입제도가 나왔는데 ‘선시험 후지원’ 형태의 전형절차로 전·후기로 나눠 모집했다. 전형일자가 같은 대학이라도 무제한 복수지원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 제도는 한 번의 시행으로 끝났다. 1982∼1985년까지의 학력고사와 고교내신 병행은 학력고사 성적과 내신성적의 기계적 합산에 의한 점수로 당락을 결정해 수험생들의 극심한 눈치작전과 배짱지원이라는 문제를 돌출했다.

다시 나온 게 논술고사를 추가한 1986년의 제도다. 그런데 이 제도는 입시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여론 때문에 2년 만에 폐지됐다. 다시 논술을 빼고 면접을 넣은 입시제도(1988∼1993)가 나왔고 1994학년도에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라는 새로운 국가고사형태로 대치됐다.

교육수요·공급자, 역지사지하라

학교 입시담당교사조차 헛갈려 하는 이런 조령모개(朝令暮改) 교육정책에 대한 관계당국의 반성은 전혀 없다. 사교육시장을 걱정하는 척하며 공교육을 바로잡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믿어달란다. 문제가 생기면 오히려 학생, 학부모 등 교육수요자 탓을 한다. 자식 교육에 있어 교육당국을 믿지 못하는 상황에서 자식을 둔 죄에 검투장에 뛰어드는 것을 주저할 학부모가 있을까? ‘멀리 보라 하고 꿈을 가지라’고 자식에게 말하고픈 부모를 ‘앞만 보라 하고 꿈꿀 시간을 주지 않는’ 모진 학부모로 만든 장본인이 누구란 말인가?

지금 우리나라 교육현장은 좌·우, 진보·보수의 이념 대결장으로 변했다. 6·2지방선거 후에는 아주 노골적이다. 교육수요자는 제대로 된 교육 하나만을 바라는데, 교육공급자는 교육수요자를 볼모로 잡고 자기 입맛에 맞는 교육을 하겠다고 배짱이다. 분명 교육공급자 중에는 교육수요자가 있을 것이고, 교육수요자 중에도 교육공급자가 있을 터인데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없는 듯해 착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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