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밭에는 둑이 없다고 한다. 내 밭, 네 밭을 돌멩이로 표시했을 뿐이다. 밭둑이 없기에 밭을 갈고 씨앗을 뿌리고 거두는 일을 할 때는 공동으로 하게 된다. 이 경작 제도는 독일 사람으로 하여금 남이나 이웃을 무시하는 개별 행동을 못 하게 했고, 집단의 이익에 개인의 이해나 행동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화음과 조화를 생명으로 하는 합창과 오케스트라가 독일에서 발달한 이유도 이 농사 관습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이런 습관은 독일이 통일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두 체제의 화음과 조화를 모색하는 모태였던 것이다.

우리의 경우를 살펴보자. ‘너’ 아니면 ‘나’의 이분법으로 편을 가르고, 내 의견만이 옳다는 풍조가 만연하다. 하지만 우리 민족의 피는 그렇지가 않았음을 선조의 지혜로운 용인술을 통해 알 수 있다.

구치관(具致寬)을 새로운 정승으로 발탁한 세조는 구(舊) 정승인 신숙주와 사이가 불편하다는 사실을 알고 이 신·구(新·舊) 두 정승을 불렀다. 임금의 물음에 틀리게 대답하면 벌주를 내린다며 “신 정승” 하고 불렀다. 신숙주가 “예!” 하고 대답하자 신(新) 정승을 불렀지 신(申) 정승을 부른 것이 아니라며 벌주를 내렸다. 이번에는 구 정승을 불러 구치관이 대답하면 구(舊) 정승을 불렀다며 벌주를 내렸다. 다시 ‘신 정승’, ‘구 정승’을 반복하며 벌주를 주는 식으로 취하도록 만들어 두 사람을 자연스럽게 화해시켰다. 대단한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선조 때 정승 이항복의 지혜로운 유머도 널리 알려져 있다. 동서당쟁으로 왜란을 야기해놓고도 피란 가서까지 동서당인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았다. 삿대질하며 언쟁이 격화돼 있는 조정에 이항복이 초연히 일어서 “참 큰 실수를 했습니다. 이렇게 싸움을 잘 하는 동인들로 동해를 막게 하고, 서인들로 서해를 막게 했으면 왜놈들이 어떻게 이 땅에 발을 붙였겠습니까. 뒤늦게 이를 깨닫게 되니 원통합니다”라는 말로 조정을 숙연케 했다.

대전시민들의 관심을 한 곳으로 몰아넣었던 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경쟁과 다툼을 뒤로 한 채 ‘대한민국 신중심도시 대전건설’의 희망찬 비전을 제시하기 위한 민선5기 시정이 닻을 올렸다. 선거는 짧았다. 그러나 그 후유증이 길면 길수록 대전 발전의 저해 요인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이제는 화합과 소통이다. 선거 열기는 식었고, 새로운 건설과 변화를 희망하는 지역사회의 다양한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치열했던 선거 과정에서 드러났던 ‘네 편, 내 편’ 식의 편가르기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볼 때다.

화해의 화(和)는 입(口)으로 하는 말이 벼(禾)가 비벼대는 소리처럼 온화하게 조화(調和)한다는 뜻이다. 설문해자(說文解字)는 화를 ‘소리가 어울리다(相應)’로, 노자는 ‘노래와 소리가 서로 어울리다(音聲相和)’로 해석했다.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의 식전 공연에서 한자 화(和)의 카드섹션을 펼쳤다. 왜 그랬을까? 공자의 중용(中庸)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군자는 남과 화목하게 지내되 자기주장을 지키고 구차하게 뇌동하지 아니하며, 소인은 부화뇌동하며 진정 화합하지 못 한다(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

공자의 정치적 이상은 인(仁)과 예(禮)의 실현이었다. 이를 구현할 때는 화(和)를 방법론으로 사용했다. 공자의 유가사상이 극단주의에 치우치지 않은 연유다.

이제 결론은 자명해졌다. 선거로 얼룩졌던 앙금을 화해와 소통으로 승화시키고 150만 시민이 함께 힘을 모아 대전발전을 이끌어야 한다. 우리에게는 지역경제 활성화, 도시철도 2호선 건설, 의료관광 산업 육성, 신성장동력 창출과 삶의 질 향상 등 많은 과제가 산적해 있다. 삼합은 돼지고기, 김치, 홍어가 각자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세 가지 재료가 모여 조화로운 맛을 낸다. 이처럼 ‘네 편, 내 편’을 ‘우리 편’으로 조화시켜 대전 발전을 이끌어가야 할 것이다. 대전인의 저력이 있음을 보여주자.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