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9>--신 숙<청주시립정보도서관>

   

누구나 일상에 지칠 때면 홀연히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간단한 배낭과 비행기티켓, 그리고 가이드가 필요 없을 만큼 충분한 정보가 담겨있는 여행책자. 실로 나 역시 해외여행을 갈 때엔 여행책자 하나면 두려울 것이 없었다.

특별히 그 나라의 언어를 몰라도 손짓이며 발짓이며 책에 보이는 그림들을 보여주면 웬만한 사람들은 친절하고도 정확하게 안내를 해준다. 하지만 이런 여행은 어쩐지 낭만적이진 않다. 일상에 지쳐서 떠나온 여행인데 배낭은 너무 무겁고, 가봐야 할 관광명소들도 너무 많다. 그래도 한 곳이라도 놓칠세라 꼼꼼히 따져가며 이곳 저곳 점을 찍고 다닌다. 여행에서 돌아와 남는건 유명한 건축물 아래서 브이자를 그리며 해맑게 웃고 있는 나의 모습. 그런데 그것 외엔 남는 게 없다. 참 이상하다.

내가 꿈꾸는 여행을 한 이가 있다. 그의 여행에는 유명한 건축물이나 그 앞에서 해맑게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사진 따위는 없다. 그는 여행에서 사람을 만나고, 과거를 만나고, 미래와 조우하며, 나를 찾는다. 그의 여행길에서의 사진은 이발사 아저씨가, 지하철에서 표정 없이 앉아있는 여인이, 그리고 사막에서 짐을 싣고 있는 낙타가 주인공이 된다. 여행에서 본 것들의 나열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꼈던 짧막한 이야기가 한 장 한 장의 사진들과 어우러져 설명 없이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끌림’. 여행에세이답게 매혹적인 제목이면서 이 책과 아주 잘 어울리는 제목이다. 시간과 경제적 여유가 없이도 여러분을 세계 곳곳의 도시로 안내해 줄 마법 같은 책을 소개 한다.

지난 10년 동안 50개국 200여개의 도시를 돌아다닌 저자 이병률씨가 중국, 베트남, 캄보디아,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터키, 미국, 모로코, 페루, 인도, 네팔 등 아시아, 유럽 및 북남미 등 세계 각지를 여행하며 사진과 글로 기록한 순간들을 책으로 모았다. 여행 산문집이지만 여행정보나 여행지에 대한 감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떠남’ 자체의 흔적을 투명한 감성으로 포착했다. 여행 가방에 쏙 들어옴직한 작은 사이즈의 책 크기도 그렇거니와 오돌 도돌 책 표지를 장식한 남미 시인의 시 구절을 점자처럼 만져보는 재미, 표지 한꺼풀을 벗겨 초콜릿으로 발라놓은 듯한 속표지 등 책을 읽는 즐거움을 더했다.

끌림은 목차도 없고 페이지도 매겨져 있지 않다. 그냥 스르륵 펼치다가 맘에 드는 장에 멈춰 서서 거기부터가 시작이구나, 읽어도 좋고 난 종착지로부터 출발할 거야, 하는 마음에서 맨 뒷장부터 거꾸로 읽어나가도 좋다. 여행이 바로 그런 거니까. 책 속의 사진을 보고 글을 읽노라면 여러분 또한 자유로이 떠돌다 그들을 만나고 작가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에 빠져들 것이다. 나는 글을 읽는 내내 설레었다. 가방을 싸고 어디론가 홀연히 떠나고만 싶어진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