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 어머니 댁에 들른 참에 거실에서 잡담을 나누시는 이웃집 아주머니들을 보고 선거 분위기를 알아볼 요량으로 얘기를 꺼내봤다.

가장 큰 관심사인 지사선거에서 마음에 두고 계신 후보가 있느냐고 물었더니 돌아온 답변은 “없어”였다. 교육감도, 시장도 같은 대답만 하셨다. 도의원과 시의원 선거에 대해서 같은 말만 들었다. 교육의원선거는 아예 말문을 닫으셨다. 그런 선거도 있느냐는 반응이었다.

가장 이상적인 정치참여 역할 못해

선거가 코앞인데 왜 그렇게 관심이 없느냐고 재차 물으니 “그놈이 그놈인데 누가 되든 무슨 상관이냐”며 선거를 왜 하는지 모르겠다고 너도나도 한 마디씩 하셨다. 그럼 누가 출마했는지는 아시느냐고 채근하니 “몰라”라는 짤막한 한 마디들 뿐이었다.

한 아주머니가 동네 어귀 시내버스 정류장에 붙어 있는 선거벽보를 보셨는지 “그 중에 한 놈이 되겠지”라며 들려준, “이번에 많은 사람들을 뽑는다더니 진짠가 보다”라는 촌평 청취를 마지막으로 즉석 취재는 끝났다. 이분들은 분명 선거에 관심이 전혀 없는 듯했고, 후보들은 ‘그놈’에 불과한 하찮은 존재들이었다.

선거를 두고 민주사회의 꽃이라고 한다. 어느 사회나 그 사회를 이끄는 지도층이 있기 마련인데 사회 구성원이 자신을 지배할 사람을 뽑는 게 선거인만큼 이 보다 좋은 제도는 없다. 물론 호불호에 의해 지지 정도가 갈라지지만 지금으로선 선거가 민주사회에서 가장 이상적인 정치참여인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이는 표면적 가치평가일 뿐이다.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추악한 이면을 들춰보면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선거만큼 해로운 사회악은 없다.

그렇다면 21세기 대한민국은 건강한 사회인가?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선거를 치르는 외국에서도 선거에서 최고의 선(善)은 당선이다. 그렇기 때문에 갈등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와 외국은 선거과정 뿐만 아니라 선거 후 갈등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확연한 차이를 볼 수 있다.

정치선진국의 경우 패자 또한 승자가 어루만지고 돌보는, 동반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떤가. 아무리 한 표 차이로 낙선해도 그 후보는 패자일 뿐이다. 패자는 계속해 잠재적인 적으로 간주된다. 당선 순간부터 차기 선거를 걱정해야 하는 게 우리나라의 선거다. 또 같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당선자가 하는 말은 ‘해명’이 되고 낙선자가 하는 말은 ‘핑계’로 치부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 승자가 패자를 위로하고 다독일 마음의 여유를 갖지 않는다.

당장 승리를 위해서라면 불·탈법을 가리지 않고 무슨 일이든지 하고 본다. 나중에 뒤탈이 날지언정 그것은 말 그대로 추후의 문제이다. 불법행위가 임기 내 걸리면 재수가 없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운이 따른다고 부러움을 산다. 그러니 불법이 난무하지 않을 수 없다.

선거판에서 공명정대한 게임은 있을 수 없다. 기대하는 것 자체가 불합리하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이를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2010년 대한민국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기대는 분에 넘치는 짓일지 모른다. 최근 들어서는 공정하게 선거를 관리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까지 불공정 시비에 오르고, 독재정권에서나 나오는 관권선거 논란이 정도를 더하는 상황이니 말해 무엇하랴.

‘그놈이 그놈’ 선거가 된 데에는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포기가 내재돼 있다. 숱한 비리나 비위 전력이 있음에도 또 다시 출마해 버젓이 당선됐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충북에서 이번 6·2지방선거에 출마한 일부 후보들의 면면을 보면 기가 막힌다. 비례대표를 제외한 439명이 등록했는데 61명이 전과자이다. 10명 중 1.4명 꼴이다. 도로교통법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다손 치더라도 횡령, 폭행치사, 뇌물수수, 강간 등 중범죄자들도 있다.

파렴치한 후보에 준엄한 심판 보여야

소득세, 재산세 등을 내지 않아 체납 대상에 오른 후보는 39명인데 이들 평균 체납액이 2천542만원이다. 한 후보는 무려 체납액이 5억9천만원에 달하고, 100억원대 재산가면서 세금 87만원을 내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러고도 주민들에게 봉사를 하겠다며 표를 구걸하고 있으니 개과천선했다는 말인가? 속된 말로 지나가는 소가 웃을 일이다.

이들에 대한 유권자의 준엄한 심판이 가능할까? 말로는 나쁜 놈들이라고 분통을 터뜨리겠지만 막상 기표소에 들어서면 마음의 갈등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묻지마가 아닌 ‘그놈이 그놈인데…’의 묻기도 싫은 투표 성향이 아직까지는 우리의 선거 정서이기 때문이다. 사회가 썩어 문드러지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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