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山是山, 水是水)’라는 화두는 현대 대한민국의 선불교 전통을 대표했던 성철스님이 1981년 조계종정으로 추대되면서 대중에게 내린 법어다.

이 법문은 성철스님이 1993년 말 입적 후에도 모든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말이 됐다.

이 공안(公案)은 ‘전심법요(傳心法要)’ 제2편 황벽희운선사(黃檗希運禪師)의 어록인 완릉록(宛陵錄)과 ‘속경덕전등록(續景德傳燈綠)’ 권22 청원유신선사(靑原惟信禪師)의 상당법어(上堂法語)에서 효시(嚆矢:시초)됐다.

또 이 공안은 현존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편찬한 백운경한선사의 어록에도 나온다.

백운선사는 ‘흥성사 주지로 계시면서 하신 설법’ 중에, “우리 선종에 따르면 이 늙은이가 지금까지 지껄인 잔소리는 오직 교종에서 하는 죽은 말이 됩니다. 그러나 지금 이 늙은이에게는 전혀 그렇지가 않습니다. 주장자를 보면 주장자라 하고 법당을 보면 법당이라고 말합니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며 스님과 스님, 마을 사람은 마을 사람입니다. 왜 그럽니까?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참이며 있는 그대로 열반이며 그대로 해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운문스님은 무엇 하나 건드리지 않았으며 원오스님 또한 온통 참인 세상을 바라만 보았다고 했습니다. 이 늙은이가 보는 바도 그와 같습니다. 정말 그와 같습니다. 여러분 이제 되었습니까?” (무비역주, 백운스님어록. 35페이지) 라고 황벽선사의 완릉록을 인용해 설법했다.

백운선사가 인용한 황벽선사는 심외무불(心外無佛:마음 밖에 따로 부처가 없다)의 법문 중.

“그저 다른 견해만 내지 않는다면 산은 산, 물은 물, 스님은 스님, 속인은 속인일 뿐이다. 산하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너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않으며 삼천대천 세계가 모두 너의 본디 면목인 것이다”라고 한 부분이다.

또 백운 스님은 황벽을 이은 운문선사의 “온 땅덩어리가 그대로 해탈의 문어거늘 공연히 불법이라는 견해를 일으키는구나! 어째서 산을 산으로 보지 않고 물은 물로 보지 않는가?”라고 한 말과, 원오극근(圖惜克動) 스님의 “땅이 산을 받친 것 같고 돌이 옥을 품은 것 같다. 꿰뚫고 지나가는 이는 모두가 무진장(無盡藏:덕이 넓어 끝이 없음) 속에 있게 되겠지만 꿰뚫고 지나가지 못하는 이는 고달픔을 헤아리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고는, 손으로 한 획을 긋고는 말하되 불전이 어째서 저리로 지나가는가? 그러니 어찌해야 하는가? 하나의 잎이 지는 것을 보고는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나니라”라는 선사들의 설법을 인용했다.

또 이 공안은 송나라 때 임제종(臨濟宗) 황룡파(黃龍派)의 청원유신선사(靑原惟信禪師)는 상당법어(上堂法語)에서 “내가 30년 전 참선하기 전에는 산은 산이고 물은 물로 보았다.

그 후 어진 스님(善知識)을 만나 선법을 깨치고 나니,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보았다. 지금 편안한 휴식처를 얻고 나니 마찬가지로 산은 다만 산이고 물은 다만 물로 보인다. 그대들은 이 세가지 견해가 서로 같은 것이냐? 각기 다른 것이냐? 만약 이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면 이 노승은 그에게 엎드려 절을 하겠노라”고 말했다.

위의 공안을 현대적 의미로 해석하면 본성(本性), 진공(眞空) 등 여러 뜻이 있지만 상대를 인정하고 더불어 사는 쌍방향 소통 즉 커뮤니이케이션의 마음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산이 물이 될 수 없고 물은 산이 될 수 없다. 다시 말해 형상 즉 모습이 바뀌기는 해도 그 본질은 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산이 물을 인정해 주듯이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 물 흐르듯이 소통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이와같은 평범한 진리를 미처 깨닫지(悟道) 못하고 자기만 잘 났다고 주장해 상호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생존경쟁 속에서 각자 사는 방식이 다르다고는 하나 해서는 안 될 일이 있고 도리가 아닌 일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본질적인 면에서 대동소이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행복과 착함을 가르치고 실천하려는 하나의 진리에 다달음에 있다.

지금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정당간의 정치적 계략이 난무하고 후보자간에 지나친 비방과 비리보다는 있는 그대로의 참 모습과 빈(空)공약이 아닌 참 공약의 소통만이 유권자들이 선택할 것이라는 진리를 깨닫고 깨끗한 선거 풍토를 이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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