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뛰는 직지이야기]-임인호 금속활자장<7>

   
 
  ▲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임인호씨가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무설조각실에서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는 왜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에 주목하는가. 이 책속에 새겨진 활자가 고요한 지구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대한민국 충북 청주시로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시선의 한가운데에는 천년동안 잠자고 있던 활자를 깨우는 혼이 담긴 장인의 손길이 있었다.

충북 괴산군 연풍면 원풍리 무설조각실에 터를 잡고 금속활자 복원에 힘쓰고 있는 중요무형문화재 제101호 금속활자장 무설 임인호씨(46).

대부분 50대가 돼서야 가능한 중요무형문화재지만, 그는 지난해 40대 최연소로 지정되면서 ‘2대 금속활자장’이 됐다. ‘스승님이 닦아 놓은 길을 걸어갈 뿐이다’고 말하는 그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금속활자’ 복원을 향해 가는 좁은길에서 스승을 기억한다. 살아 생전 마음속에 가장 큰 어른이었기에 겸상 한번 하지 않았다는 그는 스승을 항상 그리워하고 남겨주신 뜻을 잇기 위해 애쓴다.

금속활자 복원 1세대 ‘1대 금속활자장’ 고 오국진(2008년 작고) 선생의 제자로 그는 1984년부터 사찰의 현판 글씨 등을 새기는 각자장 일을 하다 1997년 10월께부터 오 선생 문하로 들어가 본격적으로 금속활자를 배웠다. “짬나면 한번 들러 보라”는 스승의 말을 좇아 7년을 꼬박 조각칼과 쇳물, 활자와 씨름한 끝에 2004년 3월 스승의 뒤를 이을 전수 조교가 됐다.

그는 스승과 함께 청주고인쇄박물관이 추진한 금속활자 복원에 힘써 왔다. 2007년부터 조선시대 주요 활자 복원에 나서 조선시대 첫 금속활자 계미자 등을 복원했다. 경자자·병진자·한구자·율곡전서자 등 조선시대 금속활자 30종과 동국정운자·인경목활자 등 목활자 8종이 그의 손을 거쳐 되살아났다.

금속활자 주조법은 두 가지다. 밀랍주조법은 주로 사찰 등에서 모양이 섬세하고 복잡한 불상, 범종 등의 불구류를 주조하는데 사용된 방법으로 고려시대 금속활자 주조에도 사용됐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하나는 조선시대에 관주활자, 왕실활자를 주조하던 방법인 주물사주조법이다.

최근 조선시대 활자복원에 힘을 기울이면서 주물사주조법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 글자본을 정하고 거꾸로 붙여 조각칼을 이용해 양각으로 글씨를 새기고 실톱으로 크기를 일정하게 잘라 다듬는다. 글자를 배열하고 주형틀을 만들고 1200도의 청동 쇳물을 탕도에 붓고 활자를 떼어내고 조판해 인판에 기름먹을 골고루 칠한 후 인쇄를 한다.

일일이 그의 손을 통해서만 완성되어지는 금속활자. “쇳물이 들어가서 글자가 섬세하게 만들어질 때 희열을 맛본다”며 “배우면 배울수록, 익히면 익힐수록,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신비로운 것이 옛 활자”라고 그는 말한다.

철저히 전통 제작 방식을 고수한다. 밀랍주조에 있어서도 전통 재현을 위해 순수 밀납을 얻기 위해 직접 토종벌을 기르며 순수 밀을 취하는 노력과 수고를 아끼지 않는다.

조선시대까지 이어오던 우리나라의 인쇄문화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졌다. 기록조차도 제대로 남아있지 않은 것을 복원하는 과정은 쉽지 않다. 앞으로도 더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그는 고려시대 사람으로 또는 조선시대 사람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임씨는 “내가 고려시대 사람도 아니고 조선시대 사람도 아니다보니 단순히 책을 가지고 옛 금속활자를 복원하는게 쉽지 않다. 직지의 가치를 제대로 세계 속에 알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로 정확하게 전통적인 방법의 금속활자 주조법을 알아내야 한다”며 “혼을 담아 우리 민족 가슴속에 살아 꿈틀거리는 우리 활자를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직지를 통해 금속활자가 세상에 드러났다. 그에게는 너무 고마운 존재가 바로 ‘직지’다.

그는 “눈만 뜨면 직지가 곳곳에 보이는데도 직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아쉽다” 며 “남은 여생을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앞선 금속활자의 가치를 알리는데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우리나라의 쉿물로 세계의 역사의 한부분이 바뀌어지고 있다. 그의 호 ‘무설’처럼 욕심을 버리고 오롯이 천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활자를 만들기 위해 혼을 담는 손길이 있는 한 ‘직지’는 우리 가슴 속에 쇠를 달구는 뜨거운 불꽃으로 살아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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