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고가는 사람들이 뜸하던 시골에 장날이 오면 여기저기서 몰려나온 상인들의 물건들이 나름대로 보기 좋게 자리를 잡고, 모처럼 날 잡아 필요한 물건들을 사러 나온 어르신들로 북적거린다.

한적했던 시장이 팔고자 하는 사람과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활기찬 흥정으로 들썩이는 축제의 장이 되는 것이다.

팔려고 하는 상인은 나름대로 좋은 가격과 품질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물건을 살 것을 독촉하고, 물건을 사려는 사람은 이것 저것 꼼꼼하게 따져보면서 살 물건을 고른다.

물론 그 중에는 한 순간의 충동으로 구매를 하고 나중에 후회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정직하지 않은 상인들의 말을 믿고 샀다가 속아서 다시는 사지 않을 거라며 이를 득득 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시골 장날의 시장을 걷다가 문득 선거도 장날과 같았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는 6월 2일에는 사상 초유의 8개 선거를 동시에 치르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있다.

유권자가 고를 후보자가 워낙 많아서 1차적으로 교육감, 교육의원, 도의원, 시·군의원선거의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하고 2차적으로 도지사, 시장·군수, 비례대표도의원, 비례대표시·군의원선거의 투표용지를 받아서 투표한다.

1인 8표의 복잡한 투표를 하게 되지만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며 지역 발전과 교육 발전을 위해 뽑는 가장 피부에 와닿는 선거이기 때문에 감히 소홀히 할 수 없는 선거이기도 하다.

이런 지방선거가 장날처럼 주민 화합과 축제의 장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서 후보자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지역사회를 위한 정책과 공약을 팔고 유권자는 이를 꼼꼼히 따져서 그것이 진정 지역 사회를 위하는 것인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공약이 마음에 든다면 실현가능한 지를 엄중히 선별하여 한 표를 줘야 할 것이다.

그 한 표가 4년 동안 내가 사는 고장의 발전과 내 자식들의 소중한 교육의 보증표가 되기 때문이다.

품질이 떨어지는 덤핑 같은 돈 선거는 자살·비리·상처로 얼룩진 민심을 만들어내는, 하루 빨리 사라져야 할 악이다.

서로 간의 비방·흑색선거는 좋은 물건들이 오가는 시장의 품격을 떨어뜨려 소비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다. 다시는 이 시장에 오지 말아야지 하고 말이다.

정치인들끼리 서로 물어뜯고 지킬 수 없는 허황된 공약만을 늘어놓는 선거는 유권자의 정치에 대한 불신을 일으키고 투표를 외면하게 만든다.

소비자가 찾아주지 않는 시장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유권자 또한 지연·혈연·학연 등 연고 관계의 잣대로 후보자를 선택하는 것은 올바로 나아가야 할 후보자의 방향을 흐리게 만든다.

편가르기 식, 헐뜯기 식 네거티브 선거는 모두가 버려야 하고 없애야 할 구시대적인 폐물일 뿐이다.

선거가 진정으로 축제의 장으로 되고자 한다면 돈선거, 비방·흑색선거, 지연·혈연·학연 등 연고 관계를 떨쳐버리고 미래를 구상하며 국민 생활에 직접 도움이 되는 매니페스토형 정책 선거로 변화해야 한다.

매니페스토는 1834년 영국의 탐워스(Tamworth) 선거에서 필(Robert Peel) 보수당 당수가 최초로 제시하였고 1997년 토니블레어가 이끄는 노동당이 매니페스토 발표 후 집권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이웃 나라인 일본에서도 2003년 가나가와현의  지사 선거에서 마쓰자와 시게후미 후보가 매니페스토 공약을 공표해 당선되었다.

이는 후보자와 유권자가 ‘부탁’이 아닌, ‘약속’과 ‘계약’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선거 문화를 정착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2009년 8월에 실시한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매니페스토로써 압승하여 54년 만에 정권 교체를 하는 데 빛을 발하기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선거 초기 전혀 유력하지 않았던 무소속 후보자가 매니페스토 정책 선거 흐름에 발 맞춰 군민 의견을 빠짐 없이 수렴키 위한 ‘군민공약 접수창구’를 개설하여 실현가능하고 군민이 원하는 공약을 제시한 결과 무소속 후보자임에도 불구하고 58.3%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된 예가 있다.

물론 당선 후에도 공약 이행 로드맵을 설정한 뒤 부족한 예산은 중앙부처를 방문하여 획득하고, 행정조직 개편 등으로 적극 추진하며 공약 이행 상황의 홈페이지 게시 및 보고대회 개최 등으로 주민과의 신뢰를 강화하였다. 참으로 좋은 본보기가 아닐 수 없다.

오는 6월 2일 실시하는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2006년 5월 31일 치러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도입된 매니페스토 정책 선거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를 거쳐 제1순환주기를 마치고 ‘지방선거 제2순환주기’를 시작하는 의미 있는 선거이다.

이러한 매니페스토 정책선거를 더욱 발전시켜 후보자와 유권자가 지역 비전과 발전을 위해 공약을 함께 만들어가고 지켜 가는 건전한 선거 문화를 정착시킨다면 선거는 5일마다 기다려지는 시골 장날처럼 4년마다 기다려지는 축제의 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