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웅 장편사회소설 뺑 이 <477>
최종웅 장편사회소설 뺑 이 <477>
  • 충청매일
  • 승인 2010.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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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부 귀농

그렇지만 캐묻지는 못했다. 물어보나마나 뻔했기 때문이다. 춤판에서 만난 여자하고 난잡한 짓이나 하고 다니는 얘길 해 줄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다. 그런데 오늘만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다. 그래서 묻는다.

“오늘 어디 가요?”

“청바지하고 점퍼 좀 줘.”

“어디 일하러 가요?”

“…그냥.”

아내는 일단 안심한다. 남편이 정장을 입으면 마음이 불안하다. 춤판을 가는 게 아니면 거기서 만난 여자와 데이트 약속이 있는 게 뻔하다. 그런 날은 말은 안 해도 속에서 불이 난다. 청바지를 찾는다는 것은 춤을 추러가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아내가 청바지와 점퍼를 챙기는 사이 창빈은 장롱 위에 쑤셔 받아 놓았던 노트북을 꺼낸다. 먼지가 뽀얗게 묻어있다.

“여보!”

“왜요?”

“이거 좀 닦아 줘.”

“갑자기 이건 왜 꺼내요?”

“…….”

또 침묵이다. 아내는 결정적인 문제에는 답변을 하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하는 남편이 답답하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는다. 갑자기 작업복을 달라는 것은 어디 일을 하러 가거나 등산을 가려는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몇 년 동안 처박아 놓았던 노트북을 꺼내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어디 취직해요?”

“이 나이에 무슨 취직야.”

“그럼 노트북은 왜 꺼내요?”

“……”

“그건 어디 있지?”

“뭐요?”

“침 가방 말야.”

창빈은 침 가방을 가지고 갈까 망설인다. 친한 사람들에게는 용하다는 소릴 듣지만 모르는 사람들에겐 돌팔이로 오해를 받기 일쑤다. 간간히 신문이나 방송에서 가슴 뜨끔한 뉴스가 보도되기도 한다. 수십 년 동안 무허가로  침술원을 차려놓고 수십 억 원을 뜯었다는 돌팔이가 구속됐다는 뉴스가 며칠 전에도 보도되었다. 그런 뉴스를 들을 때마다 자신에게 침을 맞았던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들도 저 뉴스를 보면서 날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 날은 침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건 며칠뿐이다. 누가 아프다는 말만 들으면 고쳐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병이든 다 고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다. 언젠가 목욕탕에서 있었던 일이다. 온몸에 부항을 뜬 자국이 선명한 남자가 보였다. 소장(小腸)이나 삼초(三焦) 경락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신실증 체질이다. 한마디로 물이 넘쳐서 불이 꺼지는 증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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