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부 도피

문장대에 오르면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것 같았다. 기를 쓰고 올라왔지만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공포감뿐이다. 자신의 인생도 마찬가지였다. 결혼만 하면 행복할 줄 알았다. 꿈결 같은 행복이 아니라 아내의 춤바람이었다. 진창은 문장대 위에 있는 바위를 쳐다본다. 저곳만 오르면 정말 정상이다. 철로 만든 계단을 오를수록 속리산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탁 트인 풍경이 시원하다. 점점이 이어지는 봉우리들이 신비롭다.

‘저것만 없다면…’

속리산을 도시 뒷골목처럼 지저분하게 만드는 것들이 또 보인다. 저 경찰막사만 철거해도 문장대 분위기는 확 달라질 것이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구쳐 있는 통신안테나와 헬기장마저 옮긴다면 군사기지와 같은 인상은 풍기지 않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을 느끼며 철계단을 오른다. 자신의 인생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조금만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인생을 망쳐버리지는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문장대가 아니면 절대 안 된다는 고집이 명산을 망쳐놨듯이, 자신의 좁은 소견이 자신의 삶을 망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바위꼭대기에서 바라본 세상은 우스워 보인다. 죽기 살기로 싸웠던 게 한심해 보인다. 끝없이 펼쳐진 숲은 한없이 포근해 보인다. 솜이불처럼 부드러운 숲이 진창을 유혹한다.

‘새처럼 한번 날아봐.’

‘그래도 괜찮을까?’

‘걱정하지 마. 내가 받아줄게.’

유혹이 너무 달콤하다.

“빨리 뛰어내리지 않고 뭐해?‘

저쪽에서 누군가가 독촉하는 소리가 들린다.

진창은 결심을 한다. 푸른 숲을 향해 뛰어내리려고 준비한다.

“여보!”

진창은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아내가 지신을 부르는 소리다. 죽도록 고생만 하다가 죽은 조강지처다. 화영이가 진창을 향해서 환히 웃고 있다. 그 모습이 빨리 오라는 표정으로 보인다. 진창은 앞 뒤 생각할 겨를이 없다. 화영이한테 빨리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철책에 발을 올리려고 하는데 무슨 소리가 들린다.

“진창아!”

엄마 목소리다

“엄마!”

한사코 손을 내젖는다. 뛰어내리면 죽는다는 표정이다. 진창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 눈을 돌려 천황봉을 바라본다. 경업대 비로봉을 거쳐 천황봉으로 이어지는 비경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운 모습이 진창을 유혹한다.

어린 시절 엄마를 따라 걷던 길이다. 여기서 천황봉까지 가는 길은 부잣집 정원처럼 잘 정돈 되어 있다. 그 길을 걷고 싶다. 진창은 철계단을 내려오면서 마음을 삭힌다. 지금은 단지 한 순간에 불과하다고. 여기만 빠져나가면 다른 세상이 펼쳐질 것이라고. 경찰막사와 안테나, 헬기장 등을 바라보며 저렇게 인생을 망칠 순 없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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