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부 도피

요즘 스님들은 예전하고는 다르다고 했다. 세상에서 경쟁하고 살다가 실패한 사람들이 도피처로 이용하지 않는다는 말을 들은 것 같다. 자신의 감상적인 상상이 틀린 것이지만 젊은 여승을 바라보는 사회의 눈은 여전히 신파조다.

‘저렇게 아름다운 여인이라면?’

세상을 한바탕 뒤집어놓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강력한 무기가 있었음에도 세상을 등진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마치 승용차로 화물을 실어 나르겠다는 것처럼 비능률적인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진창은 산길을 오른다.

속리산엔 세조와 얽힌 일화가 많다. 문둥병을 앓던 세조가 병을 고치기 위해 명산대찰을 찾아다니며 요양을 하다가 속리산에 들려서 효험을 보았다는 얘기들이다. 속리산 입구에 있는 정이품송도 그렇고, 세심정도 마찬가지다.

어린 조카를 죽이고 임금이 된 세조였지만 문둥병이라는 천형을 피할 순 없었던 모양이다. 속리산의 맑은 물로 병든 몸과 찌든 마음을 씻던 곳에 세심정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세심정을 지나면서 산은 갑자기 가팔아지기 시작한다.

젊은이가 빈 몸으로 걷기에도 숨이 막힌다. 가파른 산길을 지게에 짐을 잔득 지고 걷는 사람이 보인다. 지게엔 음료수 과일 같은 생필품들이 가득하다.

어느 산장에서 등산객들에게 팔 물건을 운반하는 것이리라. 진창의 호기심도 여지없이 발동한다.

‘저 젊은이는 어째서 이 산골에 와서 저 고생을 할까?’

산을 오르는 것이지만 등산화를 싣고 오르는 산과 지게에 물건을 지고 오르는 산은 다르다. 레저와 생업의 차이다. 고개를 넘고 또 넘어야 비로소 닿을 수 있는 곳에 문장대가 있다. 맨 처음 문장대에 오를 때는 기대에 부풀어있었다.

숨을 헐떡이며 이 고개를 오르기만 하면 전인미답의 신천지가 펼쳐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고통을 참았다. 기를 쓰고 올라온 문장대는 어느 도시의 뒷골목 같은 인상이었다. 어느 도시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판잣집상가에서 턱없이 비싼 값으로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그 판자 집 위에는 경찰통신대 안테나가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있었다. 바로 그 옆에는 경찰통신대원들이 기숙하는 막사가 있고, 그 아래는 헬기장도 있었다. 속리산 문장대라는 신비감은 없어지고, 도심 어느 뒷골목이나 군부대 냄새가 났다.

한마디로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몇 년 만에 올라온 문장대는 변했다. 판잣집 상가는 철거되었다. 철거는 되었지만 흔적은 아직도 남아있다. 아직도 경찰막사는 남아있고, 통신안테나도 여전하다. 속리산 문장대가 신비한 모습을 되찾으려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될 것 같다.

“혹시 경찰이 튀어 나와서 검문을 하지 않을까?”

경찰막사를 보면서 느끼는 두려움이다. 시외버스를 타려고 터미널에 갔을 때 순찰을 돌던 의경들을 보고 겁을 먹던 생각이 난다. 진창은 조심스럽게 경찰 막사 옆을 지난다.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것 같다. 문도 잠겨 있다.

그렇다면 이 시설은 활용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안심이 된다. 진창은 한숨을 토해낸다. 속세와 이별을 한다는 속리산의 문장대에 와서도 겁을 먹는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다. 속리산만 가면 모든 걸 다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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