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부 도피

진창의 눈길은 자신도 모르게 염주로 향한다. 몇 년 전 아내와 함께 산행을 왔던 그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아내가 사 달고 졸라서 사주었는데, 그 염주가 갑자기 보이질 않았다. 문제의 염주가 어떤 사내놈의 차에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하늘이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땅이 꺼지는 심정이었다.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진창은 자신도 모르게 곡을 한다. 그의 곡소리는 청아하게 울려 퍼지는 독경소리를 따라 퍼져나간다. 밀려오는 슬픔을 주체할 수가 없다. 진창의 앞을 가로막고 서는 게 있다. 거대한 산처럼 높고 큰 미륵불상이다. 진창은 더 이상 걷지를 못한다. 불상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기 시작한다.

“부처님!”

불상은 진창의 말을 알아듣는 것일까? 아니면 진창의 슬픈 마음을 짐작하는 것일까? 그윽한 눈길로 굽어본다. 달빛처럼 눈길이 편안하다. 세상 누구를 봐도 다 부끄러운데 오직 하나 부처님만은 편하다.

“부처님!”

왜 그러느냐고 묻지는 않지만 그 이유를 다 안다는 표정으로 진창을 굽어본다.

“전 부처님을 몰라요. 부처님뿐만 아니라 종교라는 것 자체를 몰라요. 아주 모른다고는 할 수 없겠죠. 세상을 살다가 진짜 힘이 들 때면 가끔 신을 생각했습니다. 맨 처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주 어렸을 때였던 거 같아요.

어딘지는 모르지만 집에서 꽤 멀리 떨어진 낯선 동네의 어느 추마 밑이었던 거 같아요. 비는 억수같이 퍼붓는데, 날은 자꾸 어두워지는데,  비가 너무 많이 와서 갈 수가 없었어요, 집엘 가자면 산을 하나 넘어야 했습니다.

대낮에도 혼자 고개를 넘자면 무시무시했습니다. 누가 자꾸 쫓아오는 거 같고, 누가 숨어 있다가 튀어나올 거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가 오고 어둑어둑한 날엔 겁이 나서 고갤 넘을 수가 없었습니다. 비에 갇혀 오도가지도 못하는 신세가 됐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두 쪽으로 갈라지는 것처럼 천둥소리가 났습니다. 여름이었지만 추웠습니다. 바깥에서 뛰어 놀던 아이들은 각자 집으로 들어갔고, 시끌벅적하던 골목이었지만 정막 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울었습니다. 혼자 울다가 나도 모르게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인지 부처님인지는 잘 모르지만 아무튼 전지전능하신 분을 찾았습니다. 이 비를 제발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신통하게도 비는 그쳤고, 전 집에 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에도 몇 번인가 혼자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을 땐 기도를 했습니다. 얼근히 술에 취해 길을 걷다가도 교회가 보이면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했던 적도 있습니다.

부처님!

미안합니다. 부처님 앞에서 교회 얘기를 한다는 게 죄송합니다. 신하면 교회가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나를 구해줄 수 있는 신은 하나님으로 연상됩니다. 제가 교회를 다녀서가 아닙니다. 부처님보다 하나님을 더 좋아해서도 아닙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맨 처음 접촉할 수 있었던 게 교회였고, 살면서도 그런 기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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