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부 도피

오히려 반문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알만한 녀석이었다. 닭을 잡을까? 아니면 뱀을 토막 낼까? 토막 낸 뱀을 삽으로 으깨버릴까? 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쫓아버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다시는 내 눈에 뜨이지 않게 할 수 있지?”

“네.”

“다시는 내 귀에 들리지 않게 할 수 있지?”

“네.”

단단히 다짐을 받았다. 그것으로 끝내 버렸다. 의외로 많은 제비들이, 예상보다 많은 꽃뱀들이 춤판에 기생하고 있었다. 폭력배들과 연계해 기업체 못지않은 조직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곳곳에 그물을 쳐놓거나 덫을 만들어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 걸리면 인정사정없이 뜯어먹는다. 당한 사람만 불쌍했다. 섣불리 문제를 제기해 보았자 망신만 당하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또 다른 세상이다. 집을 날려버릴 것 같은 태풍이지만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해마다 늘어나는 인구는 남녀가 접촉해야만 가능하다. 평생을 살면서도 교미하는 남녀를 본적이 없다. 진창이가 본 춤판은 조용했고 질서정연했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얌전했다. 무기력해 보이기까지 했다.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춤을 추자고 손 내밀 용기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었다가도 여자가 고개를 까딱하며 거절하면 왜 거절하느냐고 이유조차 묻지 못했다.

약속했던 여자가 제 시간에 나타나지 않아도 항의 한마디 못했다. 약속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놀고 있어도 못 본 척 얼굴을 돌리고 마는 게 뺑이들이었다.

그건 잘못 본 것이었다. 그가 본 것은 겉모습이었다. 빙산의 일각이었다. 수면아래에는 거대한 빙산이 감춰져있었다. 도처에 그물을 쳐놓고 먹이가 걸려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번 걸렸다하면 뼈도 남기지 않고 먹어치웠다.

그렇게 잔인한 놈들이 도처에 우글거리고 있었다. 그런 조직의 피해자는 부지기수로 많았다.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진창이었다.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마음먹고 즉결처분을 했다.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마음은 불안하다. 무슨 죄라도 저지른 것 같은 기분이다. 진창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경찰들을 바라보고 있다.

 ‘내일 모레가 추석인데…’

명절을 앞두고 정처 없이 도피를 해야 하는 심정이 처량하다. 아내가 있다면 지금 쯤 차례준비를 하느라 부산할 것이다, 시골 어머님과 처가 어른들께 드릴 선물도 장만할 것이다. 아내가 없는 가정은 불을 때지 않은 냉방처럼 차갑다.

가정에서 여자가, 아내의 존재가, 엄마라는 위치가, 이렇게 큰 것인지 상상도 못했다.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가 않고, 음식을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잠을 잤어도 잔 것 같지가 않고, 내 집에 들어와 있어도 내 집 같지가 않다.

자식들하고 같이 있어도 남남같이 서먹서먹하다. 그렇다! 아내는 우리를 지켜주는 따뜻한 온돌이었고, 우리가족 모두가 포만감을 느낄 수 있는 먹을 거리였으며, 막힘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윤활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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