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부 낙원의 몰락

정우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선숙은 해방감을 느낀다. 통장에 돈이 얼마나 되는지를 살펴본다. 여기에 민혁이가 가져올 돈까지 합치면 얼마인가도 계산해본다. 이때 문이 벌컥 열리면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참, 민혁이가 수표 가져오면 그것도 그 통장에 넣어둬.”

“언제 가져 오는데?”

“금방 올 거야.”

“알았어.”

그 인간을 어떻게 믿어? 그렇게 속아보고도 아직도 믿느냐고 한마디 해주고 싶지만 꾹 참는다. 선숙은 민혁을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쯤 외국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내 전화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선숙은 통장을 들고 은행으로 간다. 그렇지만 갈피를 잡지 못한다. 죽을 때까지 그늘에서 살수는 없다. 정우하고 산다는 것은 그늘진 삶을 자청하는 것이다. 허지만 나를 이렇게까지 믿는 정우를 배신할 수도 없다. 이렇게 많은 돈을 독식한다는 것도 양심에 걸린다.

어차피 경찰에 잡혀가면 다 게워 낼 돈이다. 차라리 나처럼 불쌍한 년이 쓰는 게 낫다. 어차피 공갈쳐서 뜯은 돈이다. 먼저 본 사람이 임자 아닌가. 이런 갈등을 느끼며 은행으로 가는 데 휴대폰이 울린다. 정우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린다.

“그 수표를 그냥 예금하면 추적을 받을 수가 있으니까 세탁을 해야 돼.”

‘세탁이 뭐야?“

“일단 다른 사람 명의로 예금했다가 다시 명의를 바꿔야 한다는 뜻야.”

“누구 명의로?”

“당신 친척이나 친구 중에서 믿을 만한 사람 없어?”

물론 사람은 많다. 그런데 이런 거금을 맡겨도 될 사람은 없다. 자칫 잘못하면 죽 쒀서 개 주는 수도 있다.

누구 명의로 예금해 놓느냐는 문제로 고민을 하는데 또 휴대폰이 울린다. 이번엔 민혁이다. 민혁의 목소리는 정우보다 더 급하다.

“내 말 잘 들어. 금방 들은 최신 정보인데, 내일 아침에 검찰이 우리 사무실에 들어 닥친대. 오늘 하루뿐이 시간이 없어. 준비 다했지? 다 됐으면 이쪽으로 빨리 와, 지금 당장!”

“검찰이라구?”

경찰이라면 정우가 모를 리가 없다. 정우가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검찰이라면 정우도 맥을 못 출 것 같다. 한낱 춤판 일에 검찰이 직접 오느냐고 의아해한다. 아무튼 다급한 상황임은 틀림없다. 빨리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묻는다.

“무슨 준비를 하란 말야?”

“공금을 현찰로 다 찾으라고 했잖아.”

“그 많은 돈을 어떻게 현찰로 찾아?”

“5만 원 권으로 찾으면 돼.”

“…알았어.”

“빨리 빨리 해야 돼, 시간이 없어.”

민혁의 음성이 가늘게 떨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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