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부 낙원의 몰락

정우는 얼른 주변을 살핀다. 마침 아무도 없다. 슬쩍 선숙의 손을 잡는다. 

‘누가 보면 어쩌려구?’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는 표정을 지으면서 손을 빼려고 한다. 그렇지만 정우의 억센 힘을 당할 수가 없다. 그들은 이제 강정우 사장님이나 고선숙 기획실장님 하며 내숭을 떠는 사이가 아니다. 그게 불편할 정도로 몸도 마음도 가까워졌다.

“여보! 통장 어디 있어?”

“통장은 왜?”

“오늘이 말일이잖아. 이렇게 돈 나갈 데가 많아.”

정우는 곱게 흘기는 선숙의 눈을 보면서 황홀하다고 느낀다. 꿀단지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다.

이 정도면 저 여자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모든 돈을 자기 명의로 예금하지만 언제 무슨 사고가 날지 모른다. 특히 수사를 해본 경험이 있는 정우 입장에서 사업하는 사람이 재산을 은닉해 놓는 것은 상식이다. 더욱이 자신은 칼 날 위에서 춤추는 광대처럼 불안한 생활을 하고 있다. 누구 다른 사람 명의로 은닉해 놔야겠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다. 동업자인 민혁이가 있으나 그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지키라는 격이다. 마누라 명의로 할 수도 있지만 일이 벌어지면 맨 먼저 추적을 받는 게 가족들이다. 선숙이 뿐이 없다. 선숙이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정우는 선숙이와 함께 사는 미래를 상상해본다. 남자를 녹일 듯이 반짝이는 저 눈을 매일 보고 산다는 건 황홀한 일이다. 게다가 속궁합은 얼마나 잘 맞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투자를 해야 한다.

“여보! 이 통장에 있는 돈 다 찾아.”

“왜?”

“당신 명의로 다시 예금하게.”

“무슨 말야?”

“잘 알다시피 난 위험하잖아. 어차피 당신하고 같이 쓸려고 모으는 돈이니까 누구 명의로 하던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 안전한 게 최고지.”

“싫어. 난 돈 관리 안 해.”

“왜?”

”멀쩡하던 부부사이도 돈 문제가 끼어들면 문제가 생기더라구. 당신 마누라한데 하라구 해.”

서로 감동을 주고받는 순간이다. 선숙은 자신에게 그런 일을 시키는 정우가 눈물겹도록 고맙고, 정우는 한마디로 거절하는 선숙의 마음에서 진실을 느낀다.

정우는 양복을 입으면 선숙에게 말한다,

“나 지금 나가 봐야하는데, 오늘은 못 들어와.

“무슨 일을 하기에 못 들어온다는 거야?”

“그 경찰 친구 만나서 저녁 먹기로 했어.”

“당신 요즘 엉뚱한 짓하고 다니는 건 아니지?”

“날 뭐로 보는 거야?”

정우는 선숙을 가볍게 포옹하며 눈을 맞춘다. 난 민혁이 하고 다르니까 믿으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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