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부 낙원의 몰락

선숙은 민혁을 믿지 못하는 버릇이 있다. 집에 다 올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민혁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믿는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민혁이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손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다.

선숙의 손을 잡았다간 가슴으로 파고들려고 한다. 선숙이 가만있지 않는다. 손까진 허용하지만 그 이상은 절대로 안 된다는 태도다. 두 사람은 말 한마디도 없이 앉아있다. 그러는 사이 선숙이네 동네까지 온다. 민혁은 차를 골목 빈터에 세운다.

여기만 오면 그들이 처음 만나 탐색전을 할 때가 생각난다. 그때는 여기가 그들의 아지트였다. 블루스를 추다가 브레지어 끈을 만지작거리던 날은 여기까지 와서도 안달을 했다. 그냥 돌아가질 않았다. 단 1분이라도 더 붙어 있고 싶어서 몸부림을 쳤다. 그런 일로 실랑이를 하고 들어가면 선숙은 한동안 나오지 않았다. 이 자리는 민혁이가 찾아와서 선숙을 무작정 기다던 장소다. 선숙은 차 문을 열고 내리려다 말고는 다짐하듯 묻는다.

“진짜 정우 씨가 가게 생겼단 말야?”

“그렇다니까.”

“그럼 우리 둘이서 도망치자는 말야?”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도 가게 생겼다니까.”

“우리가 무슨 죄가 있어?”

“그럴 몰라서 물어?”

하기야 그동안 우리가 해온 일들이 다 죄다. 죄가 아닌 일이 없을 정도로 많은 죄를 지었다. 집을 얻어서 낙원클럽을 차리고 운영하는 데 든 모든 돈들이 정상적으로 번 게 아니다. 남의 등을 치거나 속인 돈이다. 그러니 법으로 친다면 그들은 공범이다. 누가 더 나쁘고 덜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선숙은 자신도 모르게 공동운명체가 됐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향한다. 민혁은 그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승리를 예감한다. 이런 경우 선제공격을 하는 사람이 승리하게 돼있다.

싸움이라는 게 공격을 당하면 방어할 수 있는 기회도 있어야 공정한 것이다. 민혁은 정우를 선제공격으로 날려 버리고 날라버릴 참이다. 그러니 정우로부터 공격을 당할 이유가 없다. 민혁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면서 골목을 빠져나간다.

정우는 낙원클럽을 살펴보면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추석을 전후해서는 여기저기 챙길 사람을 찾아다니느라 정신이 없었고, 추석이 지나서는 갑자기 몰려 온 태풍 때문에 난리가 났었다. 태풍은 기습적이었다. 가을이 왔다고 안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찔렀다.

가을이 왔으니 태풍 같은 건 없을 것이라고 방심하는 사람들을 기습했다. 이런 저런 일들로 뺑이들도 심란해보였다. 아무리 신나는 음악을 틀어도 신명이 나지 않아 보였다. 다들 정신이 없어할 때 정우는 제비사업에 열중했다.

덕분에 적지 않은 성과도 거둘 수 있었다. 공금으로 예금해 놓은 돈도 적지 않지만 민혁으로부터 들어올 돈도 있다. 한밑천 잡을 수 있는 정도다. 그 동안 제비사업에 신경을 쓰느라고 클럽관리를 소홀히 했다. 낙원클럽의 설립목표는 낙원 같은 춤판을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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