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가 세종시 원안 사수를 위해 보름을 넘게 단식농성 중인 민주당 양승조 의원에게 공관만찬 초청장을 보낸 게 호사가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다.

정 총리는 앞서 민주당 이용삼 의원 빈소에서 잇따라 실언을 해 결국 사과까지 하는 곤욕을 치렀던 터였다.

세종시 수정 주창으로 반대 진영으로부터 고향을 팔아먹은 못된 사람으로 낙인 찍힌 정 총리는 이 두 일로 사람 됨됨이까지 의심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과연 정 총리가 인격적으로 심한 모욕을 겪을 정도로 행동거지를 잘못을 했을까. 어찌됐든 행위 당사자이니 비난의 과녁이 되는 것은 당연하지만, 총리라는 관직의 성격과 업무 강도·일정을 알면 그의 보좌진이 정 총리보다 더 욕을 먹어야 한다.

정 총리 실수, 보좌진 책임 더 커

흔히 군대용어인 참모로 불리는 보좌인은 윗사람 곁에서 그 사무를 돕는 사람이다.

정 총리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많은 업무를 소화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총리실장을 비롯한 총리실의 많은 사람, 즉 보좌관들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는 만큼 모든 일을 손수 챙길 수 없기 때문이다.

먹고 자고 씻는 일 이외는 사실상 보좌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처지이다.

총리실 보좌진은 이런 일을 하는 직업 공무원이어서 결코 허투루 하면 안 된다.

속된 말로 그게 밥줄이니까. 하지만 보좌진의 잘못은 고스란히 정 총리의 책임으로 돌아간다.

이번과 같은 경우이다.

정 총리 뿐인가. 권력의 핵인 이명박 대통령조차 보좌관들 때문에 속을 썩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우선 이번 인도·스위스 방문 때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영국 BBC 방송 인터뷰 발언 변조를 보자. 문제가 확산되자 김은혜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상당히 피곤한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고 발언이 썩 매끄럽지 못하게 진행돼 발언 파장을 고려, 대통령에게 진위를 물은 뒤 수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고 해명했다.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김은혜 대변인은 한 순간에 이 대통령을 심신미약 상태로 몰았을 뿐만 아니라 인터뷰 내용이 사실과 다르다고 국내·외에 알렸다.

김은혜 대변인의 말은 이 대통령의 직설과 다름없다.

이런 그가 대통령의 발언을 각색해 언론에 전달하는 것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대변인이 대통령의 발언을 제 입맛에 맞게 가공했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영국 BBC는 세계적으로 공신력과 영향력을 인정받고 있는 방송이다. 김은혜 대변인은 BBC의 신뢰에도 타격을 입히는 결례를 범했다. 김은혜 대변인은 대통령과 국민을 우롱했고 대한민국의 신뢰에 먹칠했다. “죄송하다. 사퇴는 없다”는 말로 이번 문제가 끝날 일이 아니다.
작년 11월 27일 방송된 이 대통령의 ‘국민과의 대화’는 청와대 보좌진의 무능력과 불성실을 여실히 보여준 압권이다.

이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집착하고 있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지금은 4대강 정비 사업으로 사업 명칭과 성격이 조금 바뀌었을 뿐 많은 국민은 대운하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대통령은 방송에서 4대강 사업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프랑스가 세느강 운하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지 않아 프랑스가 이 세느강 운하 건설 계획을 취소했음이 밝혀졌다. 분명 ‘국민과의 대화’가 즉석에서 성사되지 않은 것이고 청와대 보좌진이 이런 저런 자료를 모아 이 대통령에게 건넸을 것이다.

이 대통령이 그 자료가 엉터리라고 생각했을 리가 만무하다. 보좌진에 대한 믿음이 있으니까 모든 공중파와 수십개의 케이블이 중계한 TV 방송에 나와 국민 앞에서 자신 있게 소개했을 것이다.

보좌진을 신뢰한 결과는 비난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총리 비서실 점검해야

청와대나 총리실은 국정의 중심이다.

이곳에 무능력·불성실·무책임한 보좌관이 포진하고 있다면 이 대통령이나 정 총리 개인 입장에서, 특히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볼 때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들은 일신의 양명을 위해 대통령이나 총리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정 총리의 국정 수행 지지 여부를 떠나 지금 보좌진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듯하다.

박정희 정권 때의 차지철 경호실장과 전두환 정권 때의 장세동 비서실장이 지금도 가끔 회자되고 있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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