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찾는 직지이야기]이강선 청주향교 사무국장 <1>

   
 
  ▲ 이강선 청주향교 사무국장이 고서적이 있는 한 서고에서 책들을 살펴보고 있다.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을 찾아라.’

충북 청주는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를 탄생시킨 인쇄문화의 고장이다. 하지만 청주뿐만 아니라 국내 어디에도 직지 원본이 없다. 현존하는 직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1권이 유일하다. 상·하 2권으로 구성된 것으로 전해졌지만, 국내외 어디서도 다른 원본이 발견된 적은 없다.

그러나 직지가 금속활자로 다량 발간된 책자라는 점을 감안할 때 어딘가에 남아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직지를 찾기 위해 발로 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청주시민들의 가슴속에 뜨겁게 새겨진 ‘직지’를 다시금 꺼내보고자 한다. 본보는 직접 발로 전국 팔도를 찾아다니며 ‘직지’를 찾고 있는 그들의 발자취를 더듬어보면서 주춤했던 직지 찾기 운동의 날개를 다시 펴고자 한다.                                

그동안 알려졌던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로 찍은 독일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 앞선 청주의 금속활자로 간행된 ‘직지’는 200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되면서 세계가 자랑스러워하는 문화자산이 됐다.

직지를 찾아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이가 있다. 주인공은 이강선 청주향교 사무국장(49).

어느 헌책방에서 고서적이 대거 발견됐다는 제보를 받은 그는 뽀얀 먼지가 앉은 종이 한장한장을 조심스럽게 넘기면서 낱장 하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꼼꼼하게 살펴본다. 벌써 이렇게 전국의 고서적과 고문서를 찾아 다닌지도 벌써 10년째다. 자비를 들여 직지가 있을 만한 사찰이나 고서점가를 구석구석 누빈다.

찢겨져 있는 고문서의 낱장도 꼼꼼히 살피던 이 사무국장은 “직지 책 한권을 찾는 것도 의미가 있지만 ‘한 장’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는 각 장에 페이지나 성서를 뜻하는 문구가 따로 적혀있지 않아 낱장을 한권으로 만들 때 앞의 내용을 읽고 다음 장의 내용을 맞추는 형식으로 복원됐다고 한다. 하지만 ‘직지’는 매 장마다 ‘直指下(직지하)’라는 문구와 페이지가 적혀있어 낱장만 있더라도 직지의 한부분임을 알 수 있도록 돼 있다.

그는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지혜로웠는지 직지를 찾으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며“ 낱장을 찾게 되면 직지의 국내 현존 가능성은 한층 더 높아지기 때문에 낱장도 그냥 보고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충북 보은 법주사 앞 상가의 중국 음식점에서 쾌쾌묵은 책 100여권의 제보를 받고 단숨에 달려갔던 일, 오래된 절들을 찾아다니느라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올랐던 발걸음, 직지사(寺)에서 직지를 찾기 위해 서고를 뒤적거리다 목판으로 인쇄된 500년된 다라니경을 발견했던 일, 순천 송광사의 서고를 살펴보려 방문했지만 끝내 서고를 공개하지 않아 아쉬움만을 남긴채 돌아왔던 일 등 그에게 직지를 찾기위해 흘렸던 땀방울과 발자취는 이제 추억이 되고 말았다. 직지를 찾기위해 발족된 단체의 활동은 중단이 되고 개인적으로 활동을 이어가기에는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다.

그는 “이제는 단순히 개인적인 열정으로 될 일은 아닌 것 같다. 직지를 찾을 수 있는 전문화된 단체를 구성해 찾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1999년 발족된 직지찾기운동본부에서 활동을 시작으로 지난 10년동안 50건의 제보를 받고 직지를 찾아다녔지만 지금은 ‘직지찾기’의 관심도가 낮아져 그는 안타까워하고 있다. ‘직지찾기’운동이 한때는 20~30건의 제보가 들어오는 등 관심 속에서 왕성한 활동이 이뤄졌지만 2000년부터 간신히 5건의 제보를 받을 정도로 지금은 거의 직지찾기운동이 중단된 상태다.

그는 “지금은 직지에 관심이 있는 시민 몇 명만이 찾고 있지만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해서는 안될 일이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할 일이다”며 “시민의 힘으로 찾는다는 것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일이냐. 누가 내일처럼 찾아주겠습니까. 우리 청주시민밖에 없지 않습니까”고 직지찾기운동에 대한 관심을 호소했다.

또 “우리는 조상님들이 해놓은 것조차 간수도 못하고, 조상님들이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조차 못 얹어놓고 있는 실정”이라며 “현재는 주도적으로 직지를 찾는 곳도 없어 더욱더 안타까운 실정이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 사무국장은 “최근 직지의 저자인 백운화상이 청주가 아닌 전라도 고부 출신이라는 이유로 전라도에서 부각을 시키기 위한 활동이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지역에서 직지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수동적인 것 같다”며“학술적 연구와 후손을 위해서도 직지 찾기가 결실을 맺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