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기곡경(旁岐曲俓).

교수신문에서 선정한 지난해의 사자성어다. 우리말로 직역하면 ‘샛길과 굽은 길’을 의미한다.

굳이 의역을 하자면 ‘바른 길을 좇아 정당하고 순탄하게 일을 하지 않고 그릇된 수단을 써서 억지로 한다’는 뜻이다. 이 말은 조선중기 유학자 율곡 이이가 ‘동호문답’에서 군자와 소인을 가려내는 방법을 설명하면서 소인배는 ‘자기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방기곡경의 행태를 자행한다’고 말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교수신문처럼 거창하게 나라의 일을 꼬집어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지금 우리 지역사회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청주ㆍ청원통합문제를 놓고 벌어지는 행태를 지켜보면서 이 사자성어가 가슴에 절실하게 와 닿았을 뿐이다.

청원군의회 의원 장애물 취급

청주ㆍ청원통합 추진단체가 배포한 홍보물이나 주장에 따르면 두 지역이 통합에 성공할 경우 그 미래는 한마디로 화려한 장밋빛이다. 거기에다 통합하면 정부에서 수 천 억원의 인센티브까지 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통합을 요구하는 측에서도 인심 쓰듯 이것저것을 더 얹어주겠다고 한다.

이와 더불어 한편에서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여기저기서 이구동성으로 청원군의회 의원들에게 통합노선에 무조건 합류하라고 언성을 높이고 있다.

실정이 이러하다보니 청원군의회 의원들은 졸지에 통합을 가로막는 장애물 취급을 받고 있다.

그렇다고 태도를 바꿀 수 있는 형편도 못된다.
사안자체가 워낙 중대하기 때문이다.

힘들고 억울하기 그지없겠지만 거역할 수 없는 숙명으로 받아들여 인내하고 또 인내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으로서는 통합후의 미래가 좋아질지 나빠질지, 각종 약속이 빠짐없이 지켜질지 안 지켜질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일단 구미가 당길만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청원군의회 의원들의 마음은 요지부동이다. 법률이 보장하는 민주적 방식에 의거 통합여부를 결정하라는 입장에서 물러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알려진 것처럼 청원군의회 의원들이 통합에 반대를 하는 것은 아니다. 청주시와 청원군의회가 모두 찬성하면 나머지 절차를 생략하고 곧바로 통합을 확정짓겠다는 정부의 방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대 입장에 서게 된 것뿐이다. 주민들에게 선택의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주민투표를 끌어낼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당연한 처사이다. 백번을 곱씹어 보아도 옳은 소신이다. 청원군이라는 공동체의 명운을 좌우하는 막중대사에 그 구성원들의 모든 참여와 기회 부여는 당연지사이자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정당성 확보차원에서도 그게 순리이다. 대다수 청원군민들 또한 그렇게 하리라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청원군의회 의원들은 제 역할을 못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통합대열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이유 때문이다. 중차대한 통합문제를 주민들의 직접 참여방식으로 결정하는 것이 순리인지, 아니면 15만 군민들의 참정권을 외면한 채 청원군의회 의원 12명이 하고 안하고를 확정하는 것이 이치인지는 불을 보듯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어찌된 사연인지 지역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오히려 지역사회에서는 청원군의회 의원들이 순리를 따르겠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하루하루를 갈등과 고통 속에서 힘겹게 버텨 나가고 있을 그들을 생각하면 한없는 연민이 느껴진다. 오죽하면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어렵사리 당선된 의원직까지 그만두고 싶은 심정이라는 말이 나올까.

주지하다시피 통합은 15만 청원군민들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이다. 더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서로간의 의견 양립으로 감정의 골이 깊어질 대로 깊어져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후일 역사적 평가도 각오해야 하는 뜨겁고도 첨예한 사안이다.

합리적 방법 택해서 추진해야

뻔히 알면서 불속으로 뛰어 들어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청원군의회 의원들에게 순리를 버리고 방기곡경의 행태를 취하라고 종용하는 것은 사지의 길로 들어가라는 가혹한 형벌이나 다름없다.

어느 누구라도 그들에게 떳떳하지 못한 십자가를 짊어지라고 강요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삼가고 경계해주길 바란다.

흔히 어려울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고 얘기한다. 지금이 바로 그러한 때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시련과 역경은 잠시지만 준엄한 역사는 영원하다. 그래서 더더욱 통합은 합리적인 방법을 택해서 추진해야만 한다.

청원군의회 의원들의 신념처럼 주민의, 주민에 의한, 주민을 위한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 해법은 주민투표밖에 없다. 그래야만 서로가 승패를 인정하고 잘됐느니 잘못했느니 하는 파열음을 막을 수 있다.

청원군의회 의원들이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선택한 주민투표를 역지사지의 심정으로 바라봤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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