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정부시절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린 말이 ‘개혁피로’였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직후부터 사회 곳곳에 깊숙이 뿌리박힌 부조리를 개선하겠다며 각종 개혁·혁신정책을 쏟아내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보수세력이 만든 조어(造語)이다.

국민생활과 가장 밀접한 부동산정책이 잇따라 실패하자 이들은 ‘아마추어정부’라며 여론호도에 열을 올렸다. 이런저런 안팎의 사정을 잘 모르는 국민들도 덩달아 노 대통령의 국정능력을 의심하게 됐다.

 노 대통령은 당시 무능한 대통령으로 낙인찍혔다.

현정부 법 경시 실용스트레스 줘

보수세력을 대변하고 있는 이명박정부는 이런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 있는가. 이명박정부의 모토는 ‘실용’이다.

우리나라에서 실용의 의미를 가장 잘 표현한 게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이다. 실용은 과정의 합리성을 충족한다면 큰 가치를 지니지만 이를 생략한 채 오로지 결과 우선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도덕성 시비에 빠질 위험이 있다.

지금의 이명박정부가 내놓은 결과물이 딱 그 꼴이다. 과정의 합리성은 준법을 기초로 한다. 하지만 이명박정부는 준법을 경시한다.

그래서 노무현정부가 국민들에게 개혁피로를 안겼다면 이명박정부는 ‘실용스트레스’를 주고 있다고 말해도 될 성싶다.

이명박정부는 실용을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갖다 붙이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사회에 불·탈법이 용인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런 행태에 대한 경고가 법원에서 서서히 나오고 있다. 이명박정부의 언론장악 시도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정연주 전 KBS 사장 몰아내기의 무죄 판결이 그렇다.

이명박정부는 정권 교체와 동시에 정 전 사장이 법원의 조정을 받아들인 것을 두고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검찰, 감사원 등까지 동원해 결국 내쫓았다.

법원의 조정을 수용한 것을 법원에 죄가 되냐 안되냐 되묻는 코미디 같은 일을 벌인 것이다. 정 전 사장은 무죄이지만 KBS로 되돌아가지 못한다. 이와 유사한 판결이 잇따르고 있다. 어찌됐든 이명박정부는 나름대로 목적을 성취했다고 자평할 듯 싶다.

충청권의 최대 이슈인 세종시 원안 수정을 보자.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 때 원안추진 공약을 했고 당선돼서도 일관되게 약속했다.

그런데 일부에서 행정부처 이전 백지화를 위해 군불을 슬슬 지피더니 급기야 정부가 앞장서서 행정효율이 떨어지고, 자족기능이 부족하다는 등의 납득할 수 없는 이유를 들며 원안 추진은 안 된다고 못을 박았다.

특별법까지 제정된 상황에서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원안 수정과 관련, “양심상 원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 대통령이 2007년 12월 대선에서 워낙 큰 표차로 이겨 영호남이나 수도권 등지에 비해 적은 충청권의 표가 당선에 큰 변수가 되지 않았겠지만 일조한 것은 사실이다.

충청권에서만큼은 이 대통령은 양심과 표를 맞바꾼 것인데 당선된 후인 지금은 양심을 더 중시한다는 입장이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원안추진 공약으로 비록 작을지언정 실리를 챙겼다. 이게 이 대통령의 실용 추구 방법이었다.

위장전입, 논문표절, 세금탈루, 병역기피 등의 부정적 단어는 이명박정부 고위직에서 전혀 낯설지 않다. 일반 국민에게 이런 꼬리표가 붙으면 밤잠을 설치며 가슴을 조릴 듯한데 이와 관련된 인사들은 당당하기만 하다.

이들은 시도 때도 없이 법치확립을 부르짖는다. 웃기지 않는가. 그렇다고 이들이 정책 책임자가 돼서 국민생활이 나아졌다면 모른 척하고 봐줄 수 있는데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으니 선술집에서 안줏감으로 씹히는 게 당연하다.

작금의 상황 불만 토로도 못해

많은 국민들은 경제적으로 고달프다. 이럴 때일수록 위정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함은 당연하고 혹여 잘못이 있으면 일반 국민들에 비해 엄중하게 일벌백계로 다스려져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를 바란다면 과욕이다. 행여 국가정책의 잘잘못을 따지고 들면 무지몽매한 인간으로 치부된다.

불만을 토로하기도 무서운 형국이다. 괜히 인터넷포털에 분풀이 글 하나 썼다가는 법적 분쟁에 휘말려 처벌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국가에 대한, 사회에 대한 불만이 있다면 입을 다물고 그저 가슴에 담고 삭이는 게 지금으로서는 상책이다.

연초부터 줄곧 그랬지만 2010년을 나흘 앞둔 오늘도 대한민국에서 법의 공정성이나 형평성을 논하는 자체가 쓸데없는 짓이다.

실용에 대한 관점과 가치가 위정자들과 국민간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위정자들의 실용은 법이 부여한 권한 행사이고, 일반 국민들의 실용은 법 외적인 것일 지라도 사회 통념상 부여된 의무 부담뿐이다.

그래서 국민에게 ‘실용스트레스’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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