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지략이 뛰어난 사람을 ‘제갈량(諸葛亮)’에 비유하곤 한다.

지략가는 어떤 일이나 문제를 명민하게 포착하고 이를 냉철하게 분석·평가할 줄 알아야 한다.

분석과 평가를 통해 가장 효과적인 해결책을 제시하는 지혜와 판단력도 갖춰야 한다.

제갈량이 최고의 지략가로 평가받는 이유는 이같은 덕목을 두루 충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세종시 원안 수정 논란으로 충청권이 시끄럽다.

자연스레 충청권 단체장들의 대응 방향 설정에 대해서도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특히 세종시 원안 수정 추진에 반발, 이완구 충남지사가 지사직을 전격 사퇴하면서 정우택 충북지사의 처신에 대한 관심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세종시 원안 수정에 따른 직접적 영향권인 충남과 간접 영향권인 충북의 입장은 미묘하지만 동일하진 않다.

물론 세종시 건설이 어떤 방향으로 설정되느냐에 따라 충북에 미치는 파장이 적지 않을 것이란 점은 인정된다.

이익 얻고자 하면 손해보는 쪽도 생각해야

이런 배경 때문에 정 지사에게도 이 지사와 맞먹는 대응을 요구하는 시류도 분명 존재한다. 반면 충남과 충북의 여건이 다르고, 미치는 파장 또한 같지 않은 만큼 동질(同質)·동량(同量)의 대응을 요구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견해도 병존(竝存)한다.

정 지사의 입장은 확고하다. “세종시는 원안대로 추진돼야 한다. 다만 향후 변화에 부응한 적절하고 효과적인 대응 방안은 마련해둬야 한다.”

이 지사가 지사직 사퇴를 발표하는 날, 정 지사는 이같은 자신의 소신을 재천명했다.

그럼에도 엇갈리는 정서적 요구는 정 지사의 운신을 고단케 한다.

민선 시대, 지사라는 직위가 갖는 정치인과 행정가의 ‘경계적 모호성’ 때문이다.

이런 경계적 모호성을 넘어서기 위해 정 지사에게 요구되는 것은 ‘제갈량의 지략’이다.

제갈량이 남긴 몇 안되는 지략서 가운데 ‘편의십육책(便宜十六策)’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의 내용 중 ‘이익을 얻고자 하면 손해보는 쪽도 생각해야 하고, 성공을 하려면 실패했을 때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대목은 정 지사의 고민과 맥을 같이 할 듯하다.

정 지사가 세종시 문제와 관련해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것은 충북의 이익임은 자명해 보인다.

충북은 그동안 세종시 건설에 따른 직·간접적 파급효과를 고려, 발전계획에 반영해 왔다.

기업유치에서부터 청주국제공항 활성화,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 등 주요 현안 대부분 세종시 건설 계획의 변경과 무관치 않다.

정 지사가 세종시 원안 고수 입장을 밝힌 배경도 이같은 충북도의 발전 방향의 궤도수정을 차단하려는 의지로 해석된다.

정 지사가 단순히 정치인이었다면 당장 머리띠를 매고 국회로, 청와대로 향할 수도 있다.

세종시 건설 계획이 어떤 방향으로 귀결되든, ‘투쟁과 저항’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정치인으로서 여론의 비판을 피해가는 비결이다.

향후 변화에 대한 대응책 마련보다 당장의 변화를 저지하는 데 주력한다. 내면엔 지역정서를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정치적 논리도 개입돼 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 지사는 충북도의 행정을 총지휘하는 행정가이기도 한 까닭에 당장 머리띠를 매지 못한다.

정치적 저항에도 불구, 세종시 원안이 수정될 경우까지 대비해 현실적이고 냉철한 대응책도 준비해둬야 한다.

충북 발전계획에 미치는 파장을 최소화하고, 새로운 발전계획을 효과적으로 접목해 행정 혼란을 막아야 하는 책무가 있는 연유다.

“세종시 원안 추진을 고수하되, 세종시 원안 수정 저지 전략이 무산될 경우 예상되는 손실과 변화에도 충분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는 정 지사의 논리는 제갈량의 교훈과 맞아떨어진다.  

충북을 지키는 지략을 기대한다

대비책은 말 그대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지략이다. 대비책을 세우는 것을 두고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동일시하는 시각은 잘못이다.

‘전황(戰況)’이 불리해지자 자신의 소신이나 이념과는 달리 어쩔 수 없이 행동해 왔다는 명분을 앞세워 ‘전향(轉向)’하는 것과도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는 정서적 비판을 애써 감내하며, 정중동(靜中動)에 천착(穿鑿)한 정 지사의 고뇌는 ‘정치인 정우택’이 아닌, ‘충북지사’의 숙명이자 소명(召命)이다.

그 고뇌가 ‘세종시 혼란’ 속에서 충북을 지키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제갈량을 넘어선 ‘정우택의 지략’으로 발현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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