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금요일 이명박 대통령이 TV 생중계를 통해 국민과 소통에 나섰다. ‘국민과의 대화’였다. 그러나 형식이나, 내용에서 낙제점을 받기에 충분했다. 다만 당초 100분간 진행키로 했던 시간이 2시간 가까이 늘어났으니 양적으로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있겠지만 내용에서 소통이 아닌 통보였다는 점에서 질은 떨어졌다.

이 대통령은 취임 초부터 소통을 꽤 강조했다. 그러나 이 소통은 잘사는 자, 권력이 있는 자, 권력에 비비는 자 등 일반 국민과 상당한 괴리가 있는 계층과의 소통이었다. 그러니 일반국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는 것인데 이날도 이런 마음을 가진 국민이 많았을 법하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에 대해 청와대는 어떠한 질문도 회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방송에 나온 패널들을 보니 애초부터 이런 마음은 없었던 듯 했다. 주요 질문 내용은 이미 패널들과 조정을 했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다.

형식·내용·양·질 모두 부족

패널들의 면면을 봐도 국민의 궁금증을 속시원하게 풀기에는 부족했다. 김진씨를 보자. 조선일보, 동아일보와 함께 보수언론의 대표로 불리는 중앙일보 논설위원이다. 그가 세종시와 관련돼 질문하는 것을 보고 과연 패널 자격이 있나 의심스러웠다. 그의 세종시 관련 질문을 요약하면 “대선에서 500만표라는 큰 격차로 이겼는데 왜 표도 별로 없는 충청권을 의식해 원안 추진 공약을 했느냐”는 것이다. 세종시 말을 바꾼 이유를 따져 묻는 것으로 보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절대 충청권 표를 의식한 것은 아니다”라는 이 대통령의 답변을 미리 전한 것이었다. 이후 나온 김진씨의 질문은 이 대통령이 변명하기 좋도록 길을 닦아 줬다. 김연희 베인앤드컴퍼니 대표는 아예 송곳질문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기업대표가 감히 대통령에게 세종시는 어떻고 4대강사업은 어떻고 토를 달면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을 갖고 있으면 답은 명확해진다. 정권에 밉보이면 기업이 망한다는 우리나라에서 김 대표가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부르지 않은 게 다행이다. 김 대표의 질문은 아까운 시간만 잡아먹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김 대표는 ‘꾸미’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연세대 김호기 교수가 여러 쟁점에 대해 질문했지만 그 역시 가시 돋친 말은 하지 못했다. 이 대통령이 정확한 답변을 피해가며 오히려 홍보기회로 삼아 자리만 차지한 꼴이 됐다. 그러니 그도 맥이 빠졌던지 방송 말미에는 그저 그런 평범한 질문만 했다. 차라리 그 시간에 드라마 등 본방송을 하고 국민과 소통은 기자회견을 빌려 했으면 더 나을 뻔했다. 기자회견이었으면 어물쩍 넘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 국민과의 대화를 통해 이 대통령이 국민과 소통에 큰 비중을 두고 있지 않다는 것 하나는 확인했다. 이 대통령이 이 달 초 “인심을 얻기 위해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을 상기하면 이 대통령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갈 길을 가겠다고 작심한 듯하다. 4대강사업과 관련해 국민의 70%가 반대하는 데 왜 하느냐는 질문이 있었다. 이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수십조가 들어가는 정비사업을 하려는 계획을 세웠을 때는 가만히 있다가 왜 지금은 문제를 삼느냐고 불쾌한 반응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자신은 지금 4대강사업을 할 것이고 차기 또는 차차기 대통령 때 다시 결정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환경은 한번 훼손되면 아무리 자연 치유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복원에 수십년이 걸린다고 하는데 내가 하고싶은 일을 하겠다고 하니 이 얼마나 무책임한가.

1991년 1월 발발한 1차 걸프전 당시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빌 클린턴 후보에게 패한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임기는 2주정도 남아 있었다. 민주당에서 확전을 반대하며 추가 파병을 반대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지금은 내가 대통령”이라며 추가 파병을 했다. 1차 걸프전이 44일만에 종결됐지만 그 후 미국은 아랍 정전(政戰)에 빠져 1998년 2차 걸프전까지 떠 안고 지금까지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통수권자의 판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라는 평가가 있다.

이 대통령의 ‘마이 웨이’ 의지 확인

또 하나 확인된 것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도 없다는 점이다. 방송 중 현장연결을 통해 세종시 문제로 단식농성까지 했던 유한식 충남 연기군수로부터 질문을 받았다. 유 군수는 국민과 약속인 공약을 지키라고 요구했다. 이 대통령은 이에 “유 군수가 선거를 통해 당선돼 어려운 처지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위로가 아닌 위로의 말을 꺼냈다. 유 군수가 연기군민들의 성화에 밀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수정에 반대하고 있다는 시각이 강하다. 속된 말로 당신은 표를 의식해 이러는 거 아니냐는 것과 같다. 연기군민의 대표인 유 군수에 대한 조롱이다. 국민의 이해를 구하기보다 변명이나 정책홍보에 치중한 이번 국민과의 대화를 보고 세종시 원안 추진 약속을 지키지 못해 죄송하다는 이 대통령의 짧은 사과는 진실성이 없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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