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글쓰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다. 서점에 가면 작문 책이 예전에 비해 더 많고 다양하다.

문청(文靑)에게 이태준의 ‘문장강화’를, 논문 쓰는 이들한테 움베르토 에코의 ‘논문 잘 쓰는 방법’을 권하면 그만이었던 시절은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옛날이 되고 말았다.

자서전, 자기소개서, 사업계획서, 블로그, 논술, 메모 등 온갖 글짓기 책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다.

이렇게나들 글을 쓰는 일에 관심이 많고 글짓기 책이 많은데도 글을 실제로 자주 잘 쓰는 사람은 드물다.
글을 진정으로 쓰고 싶다면 방법(方法)보다는 인식(認識)에 집중해야 한다. 인식이 확고할 때 그에 어울리는 표현 방법이 나온다.

좋은 글에는 애증이 보인다

하버드 대학교의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다. 사회 지도자로서 활약하는 졸업자들에게 성공의 가장 중요한 능력을 물었더니, 가장 많이 나온 대답이 ‘글을 쓰는 능력’이었다고 한다. 당연한 결과다.

당신에게 사업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자. 그것을 다른 사람한테 설득하려면, 그것을 글로 써야 한다. 그전에는 그저 생각에 불과하다.

사업계획서의 형식은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으나, 해당 사업에 대한 열정은 본인 스스로 갖춰야 한다. 글은 열정을 표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닌 것이다. 띄어쓰기, 맞춤법, 수사법 등은 글을 쓰는 ‘방법’이지 글을 쓰는 ‘힘’이 아니다.

글을 쓰는 힘은 과연 무엇인가? 필자는 세 가지를 들고자 한다. 애증(愛憎), 관찰(觀察), 기억(記憶). 이 셋은 상보관계(相補關係)다.

애증이 있으면 관찰하게 되고 관찰하면 기억되기 마련이다. 기억은 다시 애증을 일으킨다. 셋이 순환을 거듭하면 글을 써 나아가는 힘이 증폭된다.

좋은 글에는 ‘애증(愛憎)’이 보인다. 글로 표현하려 존재에 대한 사랑, 미움, 같은 열정적 감정이 있어야 글이 술술 나온다. 이는 객관적인 사실을 다루는 신문기사와 실험으로 검증하는 과학논문에도 있다.

글로 쓰려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중요하다고 여기지도 않으며 좋아하지도 않는데 과연 쓸 말이 있겠는가. 애증이야말로 글을 쓰는 가장 큰 힘이다.

대상에 대한 감정이 있을 때야 비로소 글은 시작된다. 하지만 단순히 감정에만 머문다면 글은 더 나아가지 못한다. 주관적 감정을 객관적 감동으로 바꾸려면 관찰(觀察)이 있어야 한다.

소재(素材)에 어떤 느낌을 받는다면 세세하게 살피게 된다. 외부 대상을 세세하게 살피는 것이라면 묘사(描寫)하기 마련이고, 자기 내면을 살핀다면 성찰(省察)하게 되리라. 관찰의 과정이 길고 깊고 세밀할수록 글은 장대하고 심오하며 세련된 모습으로 나타난다.

관찰은 끈질긴 노력이 있어야 가능하다. 단지 본다고, 그냥 생각한다고 쓸 것이 쏟아지진 않는다. 글로 쓰려는 존재에 완전히 빠져들어서 마치 그 존재가 된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몰입해야 한다.

어떤 글이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이는 새로운 관찰을 해냈기 때문이다. 집중된 노력만이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생각해내지 못한 것을 생각해낸다.

새로움이란 없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는 것이다.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볼 줄 알아야 한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쓴다는 것은 쉽지 않다. 글로 표현하기 가장 쉬운 것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일상 물건일 것 같지만, 그것이야말로 그 누구도 제대로 글로 표현해낸 적이 없다.

도시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거의 날마다 신호등을 본다. 허나 그것을 글로 표현하려고 했던 적이 드물 것이다. 신호등을 글로 쓴다고 치자, 과연 그 글이 독자의 가슴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겠는가.

글은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

평범한 소재가 특별한 감동이 되려면 사람의 소중한 활동 하나를 명심해야 한다. 그것은 기억(記憶)이다.

어떤 이의 행복과 불행의 여부는 아름답게 추억할 수 있는 지난 일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생 책 한 권도 읽지 않았고 글 한 줄도 써 보지 못한 분한테 자신의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얘기해 달라고 해 보라. 쉬지도 않고 쏟아내는 말의 홍수에 놀라게 될 것이다.

사람이 어떤 사건이나 사물을 기억해내는 것은 그것에 애증(愛憎)을 갖고 관찰(觀察)했기 때문이다. 글은 그 기억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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