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국정원,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을 4대 권력기관이라고 한다. 이들을 놓고 억지로 서열을 매긴다면 검찰청이 1위일 것이다.

민주화가 됐다는 지금도 그 위세는 대단하다. 그래서 검찰의 수장인 총장이 누가 되느냐에 전 국민의 관심이 쏠린다.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유·무죄를 따지지만 검찰은 죄값을 치르게 할 수 있고 아니면 면하게 할 수도 있다. 기소독점권을 유일하게 갖고 있는 국가기관이다. 검사의 판단이 단죄 여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중요한 기관이기 때문에 검찰총장의 임기는 법으로 보장된다. 정권으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나면 교체되는 게 일반적이다.

권력 꼭두각시 소리도 들어

이 때문에 전 정권과 관련된 민감한 사건이 터지면 검찰이 현 정권의 꼭두각시 노릇을 한다는 등의 말이 있다.

살아있는 권력, 죽은 권력 등의 단어가 등장하는 것도 검찰 입장에서야 상당한 모욕이겠지만 많은 국민은 지금 검찰이 사정권력을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올곧게만 쓰지 않고 오히려 향유한다고 보고 있다.

17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있는 김준규 검찰총장 후보자와 관련된 이런저런 말들이 많다. 전임 천성관 후보자가 도덕성 논란 때문에 청문회가 끝나자마자 낙마해 김 후보자의 도덕성만큼은 이번엔 청와대가 철저하게 검증했을 것으로 여겼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김 후보자는 내정 직후 고위공직자의 단골 불법 행위인 위장전입을 스스로 털어놨다. 두 딸을 아내가 교사로 재직했던 강남학군의 한 중학교에 입학시키고 싶은 욕심 때문에 1992년과 1997년 두 차례 위장전입을 했다고 한다.

주민등록법상 위장전입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는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은 공소시효 3년을 넘겨 처벌 위기를 면했다.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 같았으면 처벌 여부를 떠나 이 불법 사실 하나만으로도 검찰총장 자리는 언감생심이었지만 현 정부가 들어선 후에는 전혀 새롭지 않다. 어찌됐든 그가 위장전입을 스스로 밝혀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그의 솔직함은 여기까지인 듯하다. 김 후보자가 추가 위장전입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전남 장흥지청으로 발령이 난 후인 1987년 4월 부인과 딸은 장흥지청 검사 관사로 주소지를 옮겼는데 김 후보자는 옮기지 않고 그 해 5월 장인 소유인 서울의 한 아파트로 전입했다.

또 1988년 3월 서울북부지청으로 발령을 받았는데 부인과 딸은 김 후보자의 어머니가 사는 경기 과천의 한 아파트로 옮겼지만 김 후보자는 주소를 옮기지 않았다.

김 후보자 측은 이에 대해 잦은 지방 발령으로 인사가 언제 날 지 알 수 없고 인사가 날 때마다 주소를 옮기면 차량 등록 변경 등 절차가 복잡해 장인 집으로 주소를 옮긴 것이며 북부지청으로 발령 난 지 3개월 뒤 미국으로 1년 간 연수를 떠날 예정이어서 따로 집을 구하지 않고 자녀 학교 때문에 과천으로 옮겨 잠시 머물렀다고 해명했지만 엄연한 불법이다. 이를 김 후보자가 몰랐을까?

예전 김대중 정부 시절 사상 첫 여성 총리가 될 뻔했던 장상 총리서리가 위장전입이 문제돼 인사청문회에서 한나라당이 집중 추궁하자 “이 자리에 있을 줄 알았다면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한 게 생각난다. 장상 총리서리는 결국 ‘서리’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이들 이외에도 많은 인사들이 위장전입 문제 하나로 고위직 문턱에서 주저앉아야 했다. 김 후보자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궁금하다.

김 후보자가 검찰총장 후보자가 아니고 일반인이었으면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현재 신분은 최고 사정기관의 수장 후보자이다. 범죄인을 단죄하는 기관의 수장이 도덕적 흠결을 갖고 있다면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란다’는 비아냥이 나오지 않겠는가. 이런 더럽고 치사한 논쟁에서 벗어나려면 사퇴하면 그만이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을 것 같다.

털끝만치의 흠결도 없어야

김 후보자는 대전시가 개최한 열기구대회에서 열기구를 탄 적이 있다고 한다. 김 후보자는 이와 관련, “한 번 타고 싶다고 했더니 대전시에서 다른 직원 3명과 함께 태워줬다”고 말했다. 한 번 타는 데 50만원 정도 드는데 미안해서 30만원 정도를 줬다는 설명도 했다.

공짜가 아니라 대가를 지불했다고 강조하고 싶어서 한 말 같은데 만약 일반 서민이 대전시에 그런 부탁을 했으면 들어줬을까. 아니면 대전시가 검찰 고위 간부였던 김 후보자의 부탁을 감히 거절했었을까. 검찰총장이 된 후 받게 될 대접은 이를 훨씬 뛰어넘을 것이다.

김 후보자는 사소한 일들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게 분할 지 모르겠지만 검찰총장이라면 털끝만치라도 오해를 사거나 불법을 저지르지 않은, 엄청 깨끗한 인사가 돼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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