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등이 골목 상권을 접수하려다 암초에 걸렸다. 삼성데스코가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인천 옥련점 출점을 보류한 것이다. 이는 영세 상인들의 밥그릇까지 빼앗으려다 상인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힌 것이다. 물론 대기업의 저가 물량공세와 미끼 상품에 중소 상인들은 그냥 주저앉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기름 장사도 모자라 기업형 슈퍼마켓(SSM) 등 문어발 확장에 영세 상인들의 반발은 예상된 일이다.

눈여겨볼 것은 중소상인들의 대 반격이다.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중소상인들은 그동안 대형마트의 무차별적인 진출을 저지하기는커녕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자치단체에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을 막아달라고 호소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달랐다. 자치단체가 상인들의 호소를 외면하면서 그들이‘독’을 품게 만들었다. 이런 최악의 상황으로 몰고 간 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 상권 진출 전략 자체의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이는 “소비자는 항상 우리 편이다. 힘 없는 상인들은 저러다 말겠지”하고 강하게 밀어붙인 결과다.

중소 상인, 대형마트 공격

한국 유통시장은 세계 최대 유통업체인 월마트조차 뿌리내리지 못했고 홈에버 역시 손을 털고 나갔다. 세계적인 기업들과 전쟁을 치러 승리했으니 자기도취에 빠질만했다. 기업형 슈퍼마켓이 골목 상권을 집어삼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국내 대형마트가 외국 유통업체와 국내 시장을 놓고 싸워 승리를 쟁취한 뒤 처음으로 시작한 것은 대형마트 24시간 영업이다. 영세 상인들의 매출은 급전직하했다. 여세를 몰아 대기업은 목 좋은 골목 상권을 차례로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처음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고 저항할 힘도 없었다. 그러나 구멍가게조차 문닫는 절망적인 상황을 참을 상인들은 없을 것이다. 급기야 점포를 철시하고 길거리로 나섰다. 금새 깨질 것만 같았던 상인들의 허술한 조직은 조직화·세력화돼 가면서 파괴력을 나타냈다. 상인들의 대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기업형 슈퍼마켓 진출에도 속수무책이었던 상인들은 하나 둘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궁여지책을 찾다 중기청에 조정 신청이라는 해법을 찾아냈고 인천에서는 조정 신청이 받아들여지는 극적인 반전이 이뤄졌다. 청주 상인들도 중기청에 조정 신청을 내면서 인천과 같은 상황 전개가 불가피하게 됐다. 그렇게 되면 기업형 슈퍼마켓 진출은 봉쇄된다.

주목할 것은 소비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기업형 슈퍼마켓 입점 반대 운동 초기 동조자들은 재래시장 상인들과 시민·사회단체 등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번엔 소비자들까지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전개다. 물론 소비자들은 재래시장보다 품질이 좋고 깨끗하며 쾌적한 환경을 선호한다. 넓은 주차장을 가진 대형마트와 기업형 슈퍼마켓은 더더욱 좋아한다. 그러나 소비자들이 영세 상인들을 고사시키는 대기업의 매몰차고 그릇된 상혼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마트·홈플러스·롯데마트 등은 이번 사태를 소홀히 봐서는 안 된다. 골목 상권까지 초토화된다면 그 결과는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이 될 수밖에 없다. 손쉽게 골목 상권까지 집어삼키려다 큰 화를 입게 된다는 얘기다. 어디 그 뿐인가. 대기업의 타 계열사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되고 재벌 총수에까지 그 여파가 튈 가능성이 높다. 기업형 슈퍼마켓의 골목 상권 진출은 졸렬한 마케팅 수단이 아닐 수 없다.

본보 취재 결과 대형마트가 지역 차별을 하고 있는 못된 버릇도 밝혀졌다. 롯데마트는 전주시에 도서관을 지어주고 3억원의 장학금을 기탁했다. 이마트는 연간 1억원의 지역 환원 사업을 약속했다. 그런데 충북은 어떤가. 손 놓고 있다. 자치단체가 영세 상인들을 도울 방법을 찾기는커녕 ‘멍청도’가 됐는 데도 법 타령만 한다.

대기업의 골목상권 진출은 졸렬

마지막으로 다단계 회사 암웨이의 국내 진출이 좋은 사례다. 암웨이는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오랫동안 초등학교에 책을 기증하는 등 엄청난 사회적인 공헌 활동을 벌인 끝에 뿌리를 내렸다. 국내·외 기업은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는 대기업이 패배할 수밖에 없다. 더 무서운 것은 소비자들이다. 이들이 소리 없이 움직이면서 어느 순간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만들어 내 대형마트의 설 자리를 없애버릴 지 모른다. 대기업은 대기업다운 사업을 펼쳐야 한다. 골목 상권까지 진출하는 것은 졸렬한 마케팅 전략이다. 이는 상인 뿐만 아니라 소비자들의 원성을 사고 결국 그들이 등을 돌리게 만든다. 저가 미끼 상품을 앞세운 골목 상권 장악은 더 이상 안 된다.

소비자들이 작심하고 한 달 간 대형마트·기업형 슈퍼마켓을 이용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대기업 입장에선 상상만 해도 끔찍할 것이다. 제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무너지지 않을 것 같은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 이번 사태는 소비자의 힘이 바이러스처럼 전염돼 롤러코스터를 탄다면 극적인 폭발력이 생기는‘티핑 포인트(Tipping point)’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역설적으로 대기업들이 이 같은 상황을 보려거든 계속 기업형 슈퍼마켓을 골목에 진출시키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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