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요즘 꽤 시끄럽다. 겉으로 보기에 이번 분란은 지난달 29일 치러진 재보선 결과 때문이지만 더 근본적인 원인은 예전부터 이어지고 있는 식구들간의 신뢰 상실이다. 그 식구들을 대표하는 가장이 이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거대 여당인 한나라당은 의석 수만을 놓고 볼 때 이번 재보선에서 0대 5의 참패를 당했을지언정 실상 큰 문제는 아니다. 옳은 방향이든 그른 방향이든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는 수적 우세에는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친이-친박 재보선 충돌

그런데도 이번 선거 결과를 놓고 친이(親李)계와 친박(親朴)계가 서로 선거 패배 책임을 지우려다 당 지도부가 이게 아니다 싶어 서둘러 수습책으로 내놓은 ‘김무성 원내대표 카드’가 오히려 계파간 갈등을 더 심각하게 만들었다.

헤게모니싸움을 잠시 접고 재보선으로 흐트러진 당 분위기를 먼저 추스르겠다는 충정이 조금이라도 있었더라면 최소한 지금과 같은 갈등 심화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과 박희태 당대표가 박 전 대표에게 사전에 ‘김무성 카드’를 상의하지 않아 이번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그러나 사전 조율을 거쳤다고 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당원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애초부터 전혀 어울릴 수 없는 물과 기름과 같은 존재여서 조율 부재를 갈등 근원으로 꼽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두 사람은 2007년 12월 치러진 18대 대통령선거의 후보가 되기 위해 당내 경선에 나섰을 때부터 이미 갈라선 상태였다.

차라리 한쪽이 당시 경선 후보 중 한 명이었던 홍준표 현 원내대표같이 유력 후보군에서 멀어져있던 처지였다면 몰랐을까 용호상박(龍虎相搏)이었던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에게는 평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대권 확보 기회를 얻거나 잃었으니 자의든 타의든 철천지원수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박 전 대표가 대통령이고 이 대통령이 박 전 대표의 위치에 있었어도 지금과 같이 서로 으르렁거리며 상대방의 허점을 찾는데 혈안이 되는 시나리오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흔히 이 대통령을 실용주의자로, 박 전 대표를 원칙론자로 분류한다. 이같은 평가가 옳지 않다는 말도 있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때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조화를 이루면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추론은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가 서로 존중한다는 전제 하에 가능하다. 두 사람이 한나라당을 발전적 흐름으로 갈 수 있도록 하는 키를 쥐고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들은 서로 상대를 불신하고 각자의 주장만 고집하고 있다.

실용과 원칙이 부닥치면 불화가 발생하는 것은 불문가지다.

왜냐하면 실용은 결과를, 원칙은 과정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식의 이 대통령과 비록 내게 유리하지 않더라도‘악법도 법이다’식의 박 전 대표가 어느 쪽으로든 마음을 돌리지 않는 한 한나라당의 내홍은 계속될 것이다.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중 누가 당 실세인지는 내년 6월 지방선거가 가를 것이다. 선거 때마다 당내 갈등의 단초는 공천이다.

특히 전략공천이 문제된다. 전략공천을 하기 위해서는 경선 등 민주적 절차가 무시된다.

전략공천은 원칙적으로 당선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지만 우리 정치에서는 ‘내 사람 심기’로 변질됐다. 따라서 친이계와 친박계가 전략공천을 놓고 물러설 수 없는 한판을 벌일 개연성이 크다. 이보다 앞서 공천심사위원회 구성을 놓고도 대립각을 세울 것이다.

내년 지방선거 한판 대결 관심

지역에서는 벌써부터 친이계, 친박계 인사들이 내년 선거 공천에서 누가 유리할 것인지 분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들이 기대는 곳은 물론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다.

친이계는 아무리 박 전 대표라도 이 대통령의 권력을 넘어설 수 없기 때문에 자신들은 절대 밀리지 않을 것으로 자신한다. 반대로 친박계는 사실상 박 전 대표가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어 이 대통령이 전횡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결국 내년 선거 공천결과는 이 대통령과 박 전 대표 중 과연 누가 당내 1인자인지에 대한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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