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북한의 로켓 발사로 인해 한반도의 긴장이 최고조로 치솟았다. 북한의 로켓 발사는 유엔 안보리의 의장 성명을 끌어낼 정도로 전 세계가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박연차 정·관계 로비 의혹은 북한 로켓보다 더 가공할 위력을 뿜어냈다. 박연차 게이트는 북한 로켓을 뒤덮을 만큼 위력적인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박연차 수사 초기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원자인 태광실업 박 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았을 것이라는 건 그동안 학습 효과로 어느 정도 예측했다.

하지만 그가 박연차에게 직접 돈을 요구했고 당시 청와대에서 정상문 총무비서관을 통해 100만달러를 받았다는 보도는 아연실색케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보도를 보니 박 회장이 내가 아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일단 부인했다.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청와대에서 돈 받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민주당은 노 전 대통령이 돈을 받았다는 고백에 대해 “성수대교가 무너지는 것 같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는 외신의 조롱거리에 해당하는 전대미문의 사건이다. 나라의 망신도 이런 망신은 없을게다.

청와대서 돈가방 받은 대통령

도대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쯤이나 전직 대통령들의 추문이 걷힐까. 우물가에서 숭늉을 찾는 격이 아닌지 답답하다. 과거 전직 대통령들은 대기업을 비틀고 으르는 등의 협박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했지만 이번엔 상황이 다르다. 돈 받는 과정이 너무 노골적이다. 마치 금고에 넣어둔 돈을 꺼내 쓰듯 받아 갔다.

박연차는 반대 급부(세종증권, 휴켐스, 땅투기 등)로 대통령의 권력을 맘껏 유린했다. 안타까운 것은 박연차 게이트에 연루돼 노 전 대통령은 물론 어제 검찰에 불려나가 조사를 받은 권양숙 여사와 아들 건호씨, 조카사위 연철호, 구속된 건평씨 등 노 패밀리들이 줄줄이 등장했다는 전무후무한 사실이다.

어디 그 뿐인가.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동지 안희정씨도 등장했다. 충남 논산을 정치 기반으로 하는 안 씨가 박연차가 준 상품권(5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김성호 전 국정원장과 노 정권 마지막 국정원장을 지낸 김만복 전 국정원장 등 박연차 돈 맛을 본 사람들은 전·현직을 가리지 않는다. 한 마디로 안 썩은 곳이 없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다.

그런데 박연차 게이트의 충격파 속에 지난 주 주목할 만한 기사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원로 한의학자 류근철씨(83)다. 그는 지난 해 KAIST에 국내 개인 기부 사상 최고액인 578억원을 기부하면서 우리 사회를 놀라게 했다. 그는 기부에 그치지 않고 이번엔 KAIST 의술 봉사로 또 다른 나눔의 봉사에 들어갔다.

류 박사는 오늘 이 대학에 ‘닥터 류 헬스 클리닉과 KAIST 인재·우주인 건강 연구센터’ 문을 연다. 그는 이 곳에서 학생과 교직원 등의 건강을 돌보고 우주 비행사들의 대기권 진입 충격으로 인한 고통을 한의학적으로 경감시키는 연구 등을 할 계획이다.

그의 말이 걸작이다. 류 박사는 “KAIST 학생들에게 내가 가진 재산 뿐 아니라 머리 속 지식까지 전부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다”라는 말은 감동 그 자체다.

그는 현직에서 은퇴할 80대 노인이다. 거액을 기부한 것도 모자라 자신의 지식까지 모두 주고 싶다는 그의 봉사적인 삶이 너무 멋지다. 그가 KAIST에 건강 연구센터를 설치한 이유는 학생들이 언제든 들러 공부하느라 지친 몸과 마음을 사랑으로 치료하는 헬스 클리닉을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머리 속 지식까지 주고 싶다”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지 않았다면 류 박사의 이런 헌신적인 봉사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다. KAIST 학생들과 교직원 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이 시설이 너무 부럽다. 류 박사의 의술 봉사로 KAIST 서남표 총장 발(發) 개혁드라이브가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노 전 대통령과 류 박사는 한 분야에서 최고가 된 사람들이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게이트 이전까지는 전직 대통령들과 달라 보였다. 전두환·노태우 등 전 대통령들이 퇴임 후에도 ‘구중 궁궐’에 갇혀 지낸 것과는 달리 봉화마을로 낙향한 것만 봐도 그렇다. 이어 차 나무를 심고 오리 농법 등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다.

그랬던 그였지만 박연차 게이트가 폭발하면서 ‘위장막’이 걷혔다. 류 박사가 한 대학에 전 재산을 기부하고도 모자라 자신의 지식까지 몽땅 쏟아 붓고 싶다고 한 반면 그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돈 가방을 챙긴 것이다. 류 박사의 인생 후반은 노 전 대통령과 너무도 극명하게 대비된다. 한 국가의 지도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이 어떻게 인생을 마무리해야 하는지 반면교사가 되고도 남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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