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말까지만 하여도 개인 정보라는 말을 듣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이 개인 정보이고, 무엇을 보호해야 하는지 알 필요도 없었으며, 책 표지에 큼지막하게 자신의 이름과 함께 주민등록번호를 기재해 놓곤 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개인 정보는 그저 입소문을 통해서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구전에 의존하던 시절이었으며, 옛 속담에도 병은 자랑을 하며 주위에 알려야 빨리 낫는다고 할 정도로 개인 정보는 보호의 대상이 아니었다.

컴퓨터 산업의 발달과 정보화는 우리의 삶을 편하고 윤택하게 만들어준 반면, 주민등록번호 하나만 가지고도 개인의 신상을 일일이 파악하고 관리할 수 있는 위력을 가지게 되면서 개인 정보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되었다. 더욱이 개인의 질병 정보는 그 누구에게도 알려서는 아니 되는 아주 소중한 개인 정보의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병원의 진료를 받기도 힘들고, 좋은 약을 구하기도 힘든 옛날에는 자신의 질병을 주위에 잘 알려야만 구전돼 오는 민간 비방의 힘을 빌어 치료할 수 있는 길이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다. 하지만 전 국민이 세계 어느 나라에 내 놓아도 뒤지지 않는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으며, 누구나 손쉽게 병·의원에서 양질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 하에서 자신의 질병은 주위에 알려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감추고 숨겨야만 하는 아주 귀중한 개인 정보가 된지 오래다.

최근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보험 사기에 대한 처벌 방안과 함께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이, 건강보험공단이 가지고 있는 국민의 개인 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사의 보험 사기 조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손해보험 업계의 관계자는 보험 사기로 누수되는 보험금이 한 해 2조2천억원에 이르며,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질병 정보를 열람하는 주체는 금융위원회라고 한다.

보험 사기는 보험 가입자 모두에게 피해를 주는 공공의 적으로서 분명히 막아야만 하는 게 사실이다.

문제는 TV와 신문지상의 광고를 통해서 나오듯이 지금은 전화 한 통화만 하면 간단하게 무슨 무슨 보험에 가입을 할 수 있는 세상이라는 점이다.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사에 제공하게 되는 법안이 통과된다면, 영리와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민간 보험사들의 생리를 생각할 때 막상 그렇게 손쉽게 가입시킨 보험 가입자들이 보험금을 청구하면 보험 사기를 막아야 한다는 명목 하에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질병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요구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개인 정보는 가족 사이에도 비밀로 유지하고 싶은 민감하고 중요한 정보이다 따라서 개인 질병 정보가 보호되지 못하고 노출된다면 부모 형제 간의 불신은 물론 가정 파탄의 원인으로도 작용하게 될 것이다.

민간 보험사 관계자의 주장대로 한 해 2조2천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의 큰 돈이 보험 사기로 지출된다면 보험업법을 개정하여 전화 한 통화로 그렇게 손쉽게 보험에 가입을 시킬 것이 아니라, 민간 보험사는 민간 보험 가입 시 해당 보험의 목적에 합당하는 건강 검진을 보험회사의 비용으로 실시하여 질병의 유무를 꼼꼼히 검사하고 불량 가입자를 사전에 차단한다면 보험 사기는 당연히 없어질 것이다.

자신들의 이윤 극대화를 위해서 우선 보험에 가입을 시켜놓고 후일 보험금을 청구하는 모든 사람들이 보험 사기꾼인 양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질병 정보를 요청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헌법에 명시된 개인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서도 건강보험공단의 개인 질병 정보를 민간 보험사에 제공토록 하는 보험업법의 개정은 반드시 막아야 하며 어떠한 명분으로도 개인의 질병 정보를 제3자에게 제공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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