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행정안전부가 전국 광역·기초자치단체의 내년 의정비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평균적으로 올해보다 줄었지만 어려운 현 경제상황을 기준으로 여전히 많다는 시각이 많다. 의정비는 각계 대표로 구성된 의정비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그래서 의정비는 심의위원들의 성향에 따라 편차가 날 수밖에 없다. 대체적으로 정치권력 견제·감시에 앞장서는 시민사회단체는 의정비 인상을 그리 탐탁하지 않게 여기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그렇지만은 않다.

지난달 중순 청주시청 회의실에서 열린 ‘2009년도 청주시의원 의정비 결정을 위한 시민의견 수렴 공청회’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시민사회단체 대표로 참석한 인사가 “의정비를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청주시 의정비 인상 주장 황당

그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임금보다 낮게 책정된 월정수당은 의원들에게 정치적·윤리적 책임성을 부여하기 어렵다”는 등의 시민사회단체 대표의 말이라고 믿기 어렵게 이상한 이유를 들이댔다. 물론 시민사회단체에 무조건 정치권력에 반대하라고 요구할 수는 없지만 이 인사의 주장은 여러 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져 시민사회단체의 현주소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정치적·윤리적 책임을 따져보자. 지금 현직에 있는 시의원이든 도의원, 군의원 모두 선거에 출마했을 때 “시민, 도민, 군민을 위해 봉사할 기회를 달라”고 유권자들에게 읍소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대통령 할 것 없이 선출직은 모두 ‘봉사’라는 단어를 입에 달고 다녔다. 이들에게는 당시 내뱉은 말이 진심이었건 아니건 뽑히고 난 후에는 이 약속을 지켜야 할 책임이 뒤따른다. 의정비가 적어 정치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무책임한 행동을 한다면 이들은 자신의 말을 믿고 표를 던진 유권자들을 기만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민사회단체 대표의 발언은 정치인들이 소신 없이 탈당하고 이권에 관여하는 등의 일탈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해준 꼴이 됐다. 오히려 이같은 일을 철저히 감시해야하는 입장에서 말이다.

도시근로자 월평균 임금도 근거로 사용하기엔 부족함이 많다. 당시 청주시의정비심의위원회가 잠정 결정한 내년도 의정비는 3천982만원이다. 이를 월 평균으로 계산하면 331만8천원이다. 그런데 10월 기준 도시근로자 월평균 임금 232만8천원과 비교하면 전혀 적은 돈이 아니다. 이 시민사회단체 대표는 의정연구나 자료수집 등 공적 성격의 의정활동비를 제외한 급여 성격의 월정수당을 연봉으로 계산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시의원들이 도시근로자보다 연간 460만원을 적게 받는다고 했는데 일반 근로자가 공적, 사적으로 업무 성격을 정확히 갈라 임금을 받는 것으로 잘못 알고 한 말 같아 황당할 따름이다. 더 한심한 일은 이 시민사회단체 대표는 도시근로자 월평균 임금의 정확한 출처를 대지 못했다는 점이다. 공청회 토론자가 어떻게 구성됐고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고도 남음이 있다. 그러니 서로 입을 맞추고 공청회를 연 게 아니냐는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지방의원 의정비 가이드라인이 왜 나왔는가 조금이라도 생각했더라면 이 시민사회단체 대표가 신중한 입장을 취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적으로 말해 지방의원들이 받는 의정비가 너무 많다는 여론 때문이다. 이같은 여론 형성의 중심에는 시민사회단체가 있었다. 정부가 지방자치 본래의 취지를 훼손한다는 비난을 무릅쓰고 나서게 된 배경 중의 하나다.

여론을 수렴하는 자리에서 시민사회대표가 정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의정비를 정부 기준액보다 상향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은 사회감시자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현재의 정체성 자문할 시점

시민사회단체의 대표로 일컬어지는 환경운동연합이 공금 횡령의혹으로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서 도덕성에 치명타를 얻고 있다. 그동안 시민사회단체가 열악한 여건에서도 사회감시자 노릇을 충실히 해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지만 언젠가부터 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체, 특히 건설부문에서 시민사회단체가 곧 인·허가권을 가진 시어머니라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있다. 가장 눈치를 봐야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지금 시민사회단체는 많이 퇴색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본분을 망각한 채 자기이익에 충실한 여론을 등에 업고 크고 작은 꼬투리로 상대를 괴롭히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게 아닌지 자문하고 답을 구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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