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립무용단(예술감독ㆍ박재희) 24회 정기공연으로 올려졌던 ‘달의 노러(청주예술의 전당·11월14일)는 현재 우리에게 닥친 자연의 파괴를 비판적으로 다루면서도 거기에 근래 춤무대에서 보기 힘든 건강한 유희성과 판타지성을 첨가, 시적이면서도 매우 볼만하고 유익한 무대가 됐다.

이번 안무를 맡은 시립무용단의 훈련장 박시종씨는 청주를 대표하는 40대 초반의 창작춤꾼으로서 이 공연을 통해 전문무용인층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관객 모두에게 공감(共感)을 불러 일으킬 수 있는 치밀하며 탁월한 안무력을 발휘해 주었다.

이국적이면서도 동시에 향토색이 어느 정도 가미된 자연(숲)의 신령스런 이미지와 남성 춤꾼이자 연기자인 이호현(도시의 아버지이자 설계사)으로 대표되는 도시인의 분주하며 기계적이고 계획적인 삶이 대립되는 대담한 구성을 통해 안무자와 그 협력자들은 이 작품의 주제성을 뚜렷이 하면서, 동시에 작곡(원일)ㆍ영상(김제민)ㆍ의상(명재임)ㆍ연기ㆍ노래ㆍ조명(이상봉)이 화합되는 공연의 하모니를 인상깊게 이뤄냈다.

특히 음악에서 국악과 양악의 효과적인 퓨전, 춤공연에 있어서 대담한 현대무용적 동작의 삽입, 여성 나무 정령역을 맡은 훤칠한 지체를 가진 김혜경(수석무용수)의 빼어난 소리와 지역 어린이 합창단의 합세(合勢)는 이 공연을 평범한 한국춤 공연과 다른 실험성과 이채로움을 함께 갖게 하였다. 그와 함께 도시의 딸(김세연)과 ‘한 몸’이 된 숲의 왕(전건호)ㆍ강민호(도깨비)ㆍ김승환(곤충)ㆍ김지성(새)ㆍ박시연의 밝고 유머러스한 춤동작은 그 자체로서 매우 무대적 생기를 발하고 있어서 일견 셰익스피어적 연극적 유희성에 어느 정도 근접하고 있었다. 또 공연의 시각적 측면에 있어서도 흑백톤의 우울한 도시영상미와 함께 오버랩된 나무숲의 이미지와 그 숲 속 여러 정령들의 모습은 도시문명 배면(背面)에 가려지고 잊혀져가는 문명의 비극적 생태성을 입체적으로 인상깊게 보여주었다.

자칫 춤의 전개에 있어서 자연·도시의 이분법적 구성이 단순한 대립이 될 수 있는 위험성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도시의 딸이자 자연의 수호자 역을 했던 소녀 춤연기자 김세연의 밝은 존재성과 그녀를 따랐던 강민호ㆍ김승환ㆍ박시연의 유머러스한 앙상블은 그 양자 사이에서 일종의 브릿지 역할을 하면서 공연의 ‘우화적 의미성’을 높였다. 그 결과 이 공연은 모든 계층이 즐길 수 있는 건강한 주제성과 풍부한 장면적 의미를 지니면서 동시에 한국춤의 무대예술적 종합화를 성공적으로 꾀했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이 공연이 청주시민을 대상으로 단 하루, 2회 공연에 끝났다는 것이다. 내 견해로서 이 공연은 작품의 예술성과 대중적 공감성에 있어서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행해지고 있는 어떤 뛰어난 수입 뮤지컬보다도 더 볼만하고 가치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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