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은 나를 태워 세상을 밝히는 희생의 상징이다.

이 촛불이 지금 민주주의의 표상이 돼서 우리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높이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을 보면 촛불에 의해 민주주의가 사라지고 있는 아쉬운 모습들이 너무도 많이 있다.

촛불집회와 행진이 폭력과 무질서로 변화되고 법의 이름으로 무분별한 강제 진압이나 공권력에 의한 공안정국이라는 소리가 커지는 한 촛불이 민주주의의 횃불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민주주의는 피와 투쟁에 의해 달성됐지만 민주주의가 보다 높은 단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피와 투쟁이 아닌 토론과 대화, 평화와 비폭력에 의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통치와 의사결정의 방법이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나 촛불집회나 이를 보도하는 미디어들에서 문제의 핵심인 소고기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점차로 사라지고 있다. 단순히 재협상만을 외치고 있을 뿐이다. 촛불집회는 재협상이 바람직한 것인지, 재협상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활성화시켜야지 그 논의를 가로막아서는 안 된다.

지금 통상 전문가들은 소고기 협상에 대해 침묵을 하고, 광우병 전문가들은 광우병에 대한 논의를 중단하고 있다.

소위 지성인들이라는 사람들은 소고기 문제는 이야기 하지 않고 촛불의 의미만 이야기 하고 있을 뿐이다. 촛불이 소고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이 되지 않고 정권퇴진이나 반미나 반 세계화를 위한 수단이 된다면 촛불은 성숙한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데 실패할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을 바탕으로 한다.

촛불이 다양한 의견을 관용과 포용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의견과 다르다고 디지털 폭력으로 억압을 한다면 촛불은 다수의 폭력이 될 것이다. 촛불을 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주장만이 옳고 자신들과 다른 의견은 틀린 것이라는 흑백의 논리로 문제를 다룬다면 그것은 자칫 다수의 폭력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다른 의견을 틀린 것이 아닌 다른 것이라는 관점에서 볼 수 있어야 한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그 촛불이 다수의 폭력이 되지 않도록 스스로 경계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과정정치다. 결과만큼 과정을 중시한다. 정부는 국익의 이름으로 과정을 등한시한 채 FTA와 소고기 협상에 임했고 결과만을 고시라는 이름으로 발표 했다.

정부는 소고기 협상의 좋은 면만 선택해 국민들을 기만하고 있다. 외면이 현실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정부가 가지고 있는 시간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똑같이 촛불집회도 과정이 민주적이지 못하다면 집회에 대한 신뢰와 지지가 쇠퇴하게 된다.

민주주의는 여유로움 속에서 성숙한다. 급진적 민주주의란 없다. 민주주의가 급진적이면 선동주의가 될 위험이 있다. 민주주의는 인내에 의해 성숙된다. 이러한 인내가 없이 눈앞에 보이는 결과에만 집착한다면 촛불집회는 폭력으로 변질될 위험을 갖게 된다. 촛불집회도 이러한 여유로움을 가져야 한다.

여유로움이 없는 촛불집회는 민주주의를 저해할 수 있다. 

촛불이 한국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집단이기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촛불집회가 민주주의를 포장한 이기주의나 집단이익의 표출의 장이 될 때 촛불의 의미는 퇴색되게 된다. 촛불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정당이나 다른 매체를 손상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언론사나 인터넷 포탈이 있어서는 안 된다.

현재의 조중동과 이에 대립하는 매체들 간의 싸움은 촛불의 의미를 손상시키고, 촛불의 민주주의로의 발전을 왜곡할 수 있다.

촛불이 대의민주주의를 대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촛불집회는 국회의 파행을 정당화하거나 부추겨서는 안 되며, 정치인들도 촛불집회를 자신들의 정치적 지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된다. 촛불을 든 사람들은 청와대만 밝힐 것이 아니라 여의도 국회 의사당을 밝히는 불이 돼야 한다.

촛불에 의해 종교가 정치화되는 것은 경계돼야 한다. 종교단체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다양성에 의해 바람직하지만 그 활동이 편향되거나 편파적이고 정치화된다면 문제의 본질이 변질될 위험이 있다.

촛불이 한국 민주주의의 등불이 될 수 있는가는 이제 촛불을 든 사람들의 촛불이 아닌 마음의 등불이 책임져야할 과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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