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 연후 마지막 날 남대문으로 잘 알려진 국보 1호 숭례문이 화재로 소실되자 온 나라가 들썩였다. 역시나 책임 떠넘기기는 예전의 각종 큼지막한 사고 때처럼 빠지지 않았다. 소방당국과 관리당국, 여기에 정치권까지 가세해 진흙탕싸움을 벌였다. 참여정부 출범 후 계속 보여지던 ‘노무현 대통령 탓’은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이번 불은 노무현 정권이 안전업무에 얼마나 허술했는지, 신경을 쓸데는 안 쓰고 엉뚱한 데 쓴 결과가 아닌가 싶다”고 책임을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가했다. 정형근 최고위원은 “민족혼이 담긴 설에 국보 1호에 대한 방화라면 불순한 동기가 있을 수 있다”고까지 했다.

한나라당 역시나 노무현 탓

그런데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과연 노무현 대통령이나 참여정부가 이번 숭례문 화재에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큰 책임이 있는가이다. 잘 알려지다시피 숭례문 개방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서울시장 재직시절에 이뤄졌다. 당시 문화재청은 반대했다고 한다. 이 때 경비인력이 대폭 줄었는데 기존대로 숭례문 출입을 통제했더라면 70세가 다된 노인이 감히 그곳을 방화하려고 마음먹었을까.

방화용의자인 채모씨는 범행 대상으로 종묘를 고려했지만 경비가 심해 포기하고 숭례문을 점찍은 것으로 경찰 조사에서 밝혀졌다. 그렇다면 숭례문을 전격 개방한 이명박 당선자와 서울시의 책임이 더 크다고 볼 수 있다. 인기영합 행정을 펼친 게 이번 방화사건의 한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이런 배경은 모른척하고 온갖 이야기를 끌어다 붙여 노무현 대통령만 욕하고 있다. 아무리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지지도가 낮다고 해도 이번 일과 노무현 대통령을 연관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다.

한나라당 대표를 지낸 박근혜 의원이 2005년 11월 ‘문화재보호기금법안’을 대표 발의했지만 아직 소관 상임위원회인 문화관광위조차 통과하지 못했다. 이 법안은 ‘문화재의 효율적인 보존과 관리를 위해 향후 5년간 매년 1천억원씩 모두 5천억원 규모의 문화재보호기금을 설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자당 대표까지 지낸 분이 발의한 법안처리도 등한시해 놓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한나라당의 몰염치가 놀라울 뿐이다.

한나라당의 무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나경원 대변인은 “노무현 대통령이 봉하마을에 쓰는 관심의 10분의 1만이라도 문화재 방재에 쏟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는 뜬금 없는 논평을 내놨다. 봉하마을이 숭례문 화재와 무슨 상관이 있나. 공당의 논평이라고 보기엔 너무 치졸하고 유치하다.

이명박 당선자의 말은 국민을 우습게 보는 수준이었다. 그는 숭례문 소실로 사회가 혼란스러운 게 걱정이라고 했다. 국보 1호를 잃은 국민들의 참담한 심정은 사실이지만 이명박 당선자가 걱정할 만큼 사회가 혼란스럽지는 않았다. 이보다 더 큰일이 닥쳤어도 우리 국민들은 사회가 혼란스러울 정도로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이명박 당선자 말에 우리국민이 혼란스러웠다.

정치권 책임전가 몰염치

예전에 언론계의 한 선배가 한 말이 생각난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 취임식을 목전에 두고 속리산 정이품송의 큰 가지 하나가 부러졌는데 이를 취임식과 연관시켜 기사화했더니 난리가 났다고 했다. 징크스에 민감한 국민정서에 맞아 떨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만약 많은 사람들이 “새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국보 1호를 잃었다”고 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모르긴 몰라도 “이런 억지춘향이 어디에 있느냐” “새 정부가 출범하는데 재 뿌린다” 등의 불평 섞인 말을 쏟아 낼 것이다.

일각에서 숭례문 소실을 두고 ‘국치(國恥)’라는 말까지 쓰고 있다. 그러나 실상 국치는 자기반성에 눈을 감고 발전적 논의 없이 ‘네 탓’공방만 일삼는 정치권이 아직도 우리사회를 주무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나라당이 숭례문 화재를 대하는 태도는 어떤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나할 정도로 무관심해졌다. 국민들만 안타까워하고 있을 뿐이다. 한나라당이 여당 신분이 됐을 때 큰 변고가 일어날 경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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