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이란 그 사람의 가슴엔 사랑의 원류이기도 하고, 눈물의 원천이기도 하고, 때로는 보석이기도 하다. 고향은 병이기도 하고 버리려야 버려지지도 않는 모토(母土)인 것이며 뽑으려야 뽑아지지도 않는 마목 같은 것이기도 하다.’

정완영의 ‘뻐꾸기 소리 떠내려 오는 시냇물’의 내용으로 고향을 이보다 더 잘 함축해 표현해 낼 수가 없다. 내가 태어난 고향은 설사 묘지(墓地)일지라도 즐거운 법이요, 고향의 산천은 어떠한 이름난 명승지보다도 아름다운 곳이다.

설을 앞두고 고향마을 어귀에서 기다리고 있을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은 벌써 한달음에 달려가 있다. 고향은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 힘을 주는 에너지의 원이기 때문이다.

고향은 아직까지 푸근함은 그런 대로 간직하고 있다. 최근 사회복지 공동모금회가 지역을 순회하면서 모금한 성금액을 나타내는 빨간 사랑의 온도계가 이채롭다.

이는 모금 액수의 크기를 시각화한 것으로 한국인의 정(情)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낸 것은 좀처럼 찾기 힘들 것이다.

고향은 삶의 긍정적 에너지원

즉 ‘인정의 온도계(人情의 溫度計)’가 100도를 초과한 것을 보면 우리사회가 아직은 살만한 사회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것은 남을 염려하고 헤아리는 마음인 정이 여전히 남아 있어서다.

그나마 이런 모금방식마저 없었다면 그늘진 곳의 혜택은커녕 더 삭막해지고 남았으리라.

그런데 이런 한국인만의 정서인 정이 세월의 변화만큼이나 메말라가고 있어 안타깝다. 단적인 예는 사회복지시설의 방문객 수에서 읽을 수 있다. 행정기관과 공동모금회, 사회봉사단체, 기업체 등 일부를 제외하고는 발길이 뚝 끊겨 썰렁하기 짝이 없다.

문제는 일부 사회단체 등의 방문 역시 연례행사에 그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원인은 경제불황의 탓이 크다.

먹고살기도 힘든 데 남을 배려하기에는 더욱 힘겨울 수밖에 없다. 물론 정부가 복지시설의 수용자 모두를 구제할 수 있을 정도로 재정이 넉넉하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민주주의는 분명 압축성장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소외계층이 있는 것은 제도적, 구조적인 모순이 엄연히 존재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호남속요 중 정 타령의 한 대목을 보자.‘정말 묘한 것이여,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것이 색깔도 없고 냄새도 안 나는디 그것이 들면 화끈해지고 그것이 나면 오싹해지며 그것이 부풀면 사족을 못 쓴다. 그것이 닳으면 사지가 풀리며 그것이 붙으면 엿처럼 끈적이고 그것이 떨어지면 세상이 캄캄하니 정말 묘한 것이다.’

이는 한국인의 정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해 낸 것은 없을 것이다. 정은 없는 듯하면서 있는 것은 한국인의 전매 특허다. 과연 그 깊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한국인을 따라올 나라가 이 지구상에 존재할까. 한마디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간유대의 접착제가 정에 있는 것이다.

시인 서정주는“만약 정에 상표가 붙어 있다면 메이드 인 코리아(make in korea)로 돼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세기 개화기 한국에서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들이‘조선인들은 힘으로 뭉치면 약하지만 정으로 뭉치면 로마병사보다 강하다’는 보고서를 교황청에 올렸다고 하니 한국적인 정이 이미 국제적으로 알려진 것이다.

옛날 촌락사회의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향약(鄕約)의 4대 덕목 중 환난상휼(患難相恤)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이 물씬 묻어난다.

1901년 인도의 갠지스 강 대홍수 때나 1906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이 일어날 당시에도 의연금·품을 보낸 민족이다. 충남 태안 앞 바다 기름 유출사고수습 현장에 밀물처럼 몰려들고 있는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도 확인되고 있다.

정으로 뭉치면 로마군보다 강해

즉, 한국인은 어려움을 당하거나 재난을 당하면 남녀노소, 빈부귀천 없이 십시일반 정신으로 돕는데 인색하지 않는다.

세계가 태안 자원봉사자들의 물결에 감탄을 하고 노벨상 추천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정의 온도계가 펄펄 끓어올라 정으로 결속된 일체(一體)임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21세기 도시화와 산업화로 뿔뿔이 헤어져 살면서 한국인의 존재증명(存在證明)인 정이‘망실품(亡失品)’처럼 되는 것은 아닌지….

태안의 자원봉사자들에 의해서, 그늘진 이웃을 돕는 사람들에 의해서 한국인의 전매특허이자 전유물인 인정의 온도계는 샘처럼 푸면 풀수록 더욱 솟구쳤으면 한다.

아무리 정이 메마른 사회이지만 이 것은 우리가 지켜야 할 귀중한 자원이자 유산이다. 이번 설에는 유난히 불우이웃을 찾는 사람이 없다고 하니 나부터 나눔의 실천을 행동으로 옮겨보자. 그렇게 된다면 한국인의 정은 마르지 않는 샘처럼 갈수기에도 줄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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