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모임이 있을 때 참석하면 화두는 단연 19일 치러지는 17대 대통령선거이다. 선거 막판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각자가 지지하는 후보가 거명되는 데 재미있는 것은 뚜렷한 지지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왜 그 후보가 좋으냐고 물으면 열이면 아홉이 “그나마 다른 후보보다 나은 것 같다”는 단순비교 결과를 내놓는다.

이는 쏙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어 성에는 차지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차선의 인물에게 표를 던질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유권자의 자포자기형 자기위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지지후보에 대한 험담이 오가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방어하지 않는다. 오히려 덩달아 함께 공격하는 모습을 많이 봤다.

인물선택 ‘그나마’ 단서 달려

이번 대선이 2002년 치러진 16대와 크게 다른 점이 유권자들의 이런 반응이다. 보수진영 대표를 표방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진보진영 대표격인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격돌했던 2002년 대선 때만하더라도 유권자의 지지후보에 대한 애정과 자랑스러움이 대단했다.

초반부터 내내 독주하던 이회창 후보가 개혁을 앞세운 노무현 후보에게 발목이 잡히는 양상을 보인 순간 양측의 긴장감은 그 어느 때보다 팽팽했다. 그래서 몸조심, 말조심을 해야 했다. 어지간한 강심장이 아니거나 일부러 시비를 걸려고 마음먹지 않은 이상 술집 등 트인 공간에서 상대 지지후보의 인간성이나 도덕성을 거론하며 깎아 내리지 못했다. 잘못했다가는 큰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은 곧 그 후보 지지자를 비판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동질의식을 당시에는 공유했다.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존경과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후보의 사상은 왈가왈부할 필요가 없다.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그 후보만이 갖는 독특한 정치적 성향이니 말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덕목이랄 수 있는 도덕성은 다르다. 안타깝게도 이번 대선에서 이 덕목은 논쟁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다. 아니 아예 논쟁할 필요가 없는 게 이번 대선 특징중의 하나이다. 여론조사 지지도 상위 3위권에 랭크된 대통합신당 정동영, 한나라당 이명박, 무소속 이회창 등 3명의 후보의 도덕성을 논하면 입만 아플 정도로 너무나 많은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정동영 후보는 자신이 국가경영에 참여한 참여정부가 정치를 잘못했다고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자신을 통일부장관으로 발탁했던 노무현 대통령에게는 “당신의 실정으로 인해 국민의 사랑을 받지 못하니 당에서 나가라”고 비수를 꽂은 인물이다. 그러면서 국민들에게 노무현 대통령의 잘못된 국가경영을 바로잡겠으니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한다.

이명박 후보는 자녀 위장전입, 위장취업, 기사위장취업 등 열거하기도 벅차다. 범여권의 BBK 주가조작 공격에 대한 대처에서 보여준 말 바꾸기는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 입만 열면 다른 말을 하니 도대체 무엇이 해명이고 무엇이 변명인지 국민들이 종잡을 수 없게 했다.

위장전입 한방으로 낙마한 장상 전 총리서리 등이 이명박 후보를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 국민들의 변덕스런 도덕성 기준을 크게 원망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회창 후보는 처음부터 한나라당 경선에 나와 승부했었어야 했는데 이명박 후보가 각종 의혹으로 궁지에 몰리자 뒤늦게 스페어후보론을 거론하며 탈당해 대선에 뛰어드는 무임승차를 했다. 누가 봐도 이건 ‘아니올시다’인데 이회창 후보는 일부 골수지지세력의 환호를 보고 모든 국민이 자신을 지지하고 있다는 자기최면에 따른 환상을 보고 있는 듯하다. 예전 대쪽이미지를 달아준 국민의 성원이 아깝다.

도덕성 흠결 국민이 잘 알아

이같은 흠결을 유권자들은 알고 있으면서도 후보 선별 방정식에 대입하기를 싫어한다. 이들 각자를 놓고 누가 더하니 덜하니 따지는 것 자체가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이리저리 생각하고 입씨름하는 노력에 비해 가장 적합한 후보를 골랐다는 성취감이 훨씬 덜한 것이다. 그래서 ‘그나마’라는 단서를 달아 유사품을 고르고 위안을 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 중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민의 이런 아쉬움을 달래는데 적극 나서야 한다.

자기가 잘나 대통령에 당선된 게 아니라 국민이 마지못해 뽑아줬다는 것을 인식하고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꿩 대신 닭 대통령’이라는 말이 유행할지 모른다. 정품이 아닌 유사품 대통령은 국가나 국민 모두에게 불행이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