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동그란 얼굴에 눈·코·입을 그리고 밑에 ‘바보야’라고 적은 김수환 추기경의 자화상이 공개돼 화제가 됐다. 1941년 동성상업학교를 졸업한 김 추기경이 이 학교가 후에 이름을 바꾼 동성중고 100주년 기념전에 내놓은 그림이다. 김 추기경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그림과 관련, “있는 그대로 인간으로서, 제가 잘 났으면 뭐 그리 잘났고 크면 얼마나 크며 얼마나 알겠나.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라는 게 바보지. 내가 제일 바보같이 산 것 같다”고 털어놨다.

김 추기경은 ‘어떤 삶이 괜찮은 삶이냐’는 질문에 “그거야 누구나 아는 얘기 아닌갚라며 “사람은 정직하고 성실하고 이웃과 화목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려운 이웃을 도울 줄 알고 양심적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보야’ 자화상 자기반성 눈길

김 추기경은 종교, 종파를 초월해 우리 국민의 존경을 받고 있다. 이런 분이 자화상에 자신이 ‘안다고 나대고, 어디 가서 대접받길 바랬다’는 자기 반성의 의미로 ‘바보야’라고 적은 것이다. 김 추기경이 ‘괜찮은 삶’이라고 하신 말씀 중에 등장한 정직, 성실, 화목, 양심 단어는 숱하게 들었어도 이를 막상 실천으로 옮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김 추기경이 말씀하신 삶을 살았다고 자평할 수 있을 정도이면 그 사람은 김 추기경 못지 않은 추앙을 받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너그러운 잣대로 살아가고 있는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김 추기경의 자기 반성은 사회지도자가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지의 지침이다.

우리사회에 시민단체라는 자생조직이 있다. 본사 편집국에 전송되는 보도자료 팩스를 보면 이런 단체가 있나할 정도로 이제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시민단체는 이제 막강한 정칟경제·사회적 파워를 갖고 있다. 그래서 행정기관이나 일반회사 등은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전담부서까지 두고 있다. 속된 말로 한번 걸리면 끝장이 나기 때문이다. 행정기관에서 무슨 위원회를 구성할라치면 외부인사로 시민단체를 끼워 넣는다. 명색은 관련단체와 상의 또는 논의이지만 비위를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요즘 시민단체가 각종 사안에 대처하는 방법으로 연대한다는 것이다. 공동대처라고 불리는 연대는 이젠 보편화됐다. 그만큼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어서다. 한 곳에서 소리질러봤자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만 여럿이 뭉쳐 시간을 끌며 싸우면 상대가 손을 들기 마련이라는 경험적 노하우를 습득하고 서로 교감한 것이다.

문제는 이들 시민단체가 남을 비판할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추고 있느냐이다. 도덕성은 시민단체뿐만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강요되지만 사회 감시기능을 강조하는 시민단체에게는 최우선의 덕목이다.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어야 남을 비판할 때 정당성과 신뢰성을 가질 수 있다.

올해 충북지역에서는 시민단체의 활동이 상당히 활발하게 전개됐다. 충북도 K복지여성국장 임명과 괴산군 음주문화상 시상 관련이 대표적이다. 낙하산 인사로 시작된 복지여성국장 임명에 대한 시민단체의 문제제기는 나중에 박사학위논문 표절로 확산됐다. 학위를 준 고려대학교가 “표절이 아니다”라고 결론을 내렸지만 시민단체는 이마저도 믿을 수 없다고 고집했다. 결국 K국장은 시민단체 성화를 버티지 못하고 4개월도 채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업무능력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충북시민단체 고무줄 비판 씁쓸

음주문화상은 “술을 권하는 게 아니라 이왕 마실 것이면 역외가 아닌 지역에서 마시라는 취지가 전도됐다”는 괴산군의 항변에도 불구하고 결국 1회로 끝났다. “재정자립도 10%대인 괴산군이 오죽하면 그런 상까지 주겠느냐”는 동정론은 시민단체의 막강한 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했다.

최근 충북지역 대표적 시민단체인 경실련의 한 고위간부가 만취상태에서 교통사고를 냈다.

만약 자치단체 고위간부였으면 난리가 날법한데 어찌된 일인지 어느 시민단체도 말 한마디 없다. 이 간부는 고사하고 이 간부가 소속된 충북경실련조차 반성문이나 사과문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너무 미안해서 그러나 아니면 가재는 게 편이어서…. 또 아니면 연말 활동내역서 한 칸을 채울 수 없어서…. 졸렬하기 그지없다. 김 추기경의 자기반성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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