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태종이 지난 25일 북한 개성 영통사에서 연‘백중(우란분절) 천도대법회’ 도중 무원스님(천태종 사회부장)이 긴급 발표를 했다. 성지순례 중단을 선언하는 결의문이었다. 이날 법회에 참석했던 남측 신도들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아시아 태평양평화위원회·민화협 등에서 나온 북측 인사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통일부가 월 1회로 제한하고 있는 영통사 성지순례 방침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오늘을 마지막으로 성지순례를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공개든 비공개든 남측 인사가 북한에서 이 같은 발언을 하는 것 자체가 금기 시 돼왔던 전례를 비춰볼 때 이례적인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천태종은 귀경길에 경의선도로 남북출입사무소에서도 성지순례 중단선언에 대한 결의문을 배포하는 등 통일부 측의 월 1회 제한 방침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천태종의 거친 이 같은 행동에 대해 북한측조차 제지하지 않았다. 무원스님은 “정부가 천태종에 개성 관광을 열게 하라는 과제를 줬다. 우리가 현대 앞잡이인가. 도리에 안 맞는 요구다. 개성관광 때문에 성지순례가 막히는 것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천태종 중단선언 배경 관심

개성 영통사는 천태종의 성지다. 고려시대 대각국사 의천이 개창한 사찰이다. 그 후 영통사는 폐허가 됐다 천태종의 자금지원을 받아 2005년 남북 합작으로 복원을 마쳤다. 이 것이 계기가 돼 천태종은 북측과 성지순례 정례화를 추진하게 됐고 지난 6월8일 영통사에 대한 첫 성지순례를 갖게 됐다. 양측은 귀경길에 선죽교와 고려민속박물관 등 개성 시내에 위치한 유적지를 당일 일정으로 인원제한 없이 무제한 시범순례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방문인원도 연간 10만 명으로 정했다.

양측의 합의로 두 달 간 순항하는 듯 했던 성지 순례를 통일부가 제동걸었다. 통일부는 지난달 15일 월 1회, 500명 조건으로 성지순례의 정례화를 승인했다. 통일부가 이 같이 정한 배경에는 현대의 개성관광 연고권을 보호하는 차원이라는 지적이다. 통일부가 성지순례를 마치고 귀경길에 개성시내 선죽교와 고려민속박물관을 들른 것을 개성관광이라고 문제삼은 것이다. 현실적으로 개성관광 독점권을 주장해 온 현대아산이 반대하고 통일부가 부정적으로 나온다면 영통사 순례는 중단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가 있다. 오히려 통일부가 성지순례를 적극 환영해야 했지만, 북한이 영통사 성지순례를 적극 찬성하고 있다. 천태종으로서는 북측이 가장 든든한 후원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통일부의 월 1회 방침에 대해 북한은 천태종에 ‘합의대로 이행하라’고 주문하고 있다. 종단에서도 통일부의 승인과 달리 한 달 동안 4차례에 걸쳐 1천500명을 보내는 등 편법으로 성지순례를 계속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결국 천태종은 북측과 통일부의 요구대로 성지순례를 계속 할 수 없게 된 것이 중단선언을 하게 된 배경이다. 그동안 천태종이 여러 차례 통일부와 북한측 인사들과 접촉하면서 월 4차례의 성지순례를 추진해왔다. 그러나 지난 25일 영통사 백중 천도대법회에서 성지순례문제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현재 통일부와 천태종, 북측 모두 성지순례의 가치를 인식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지순례 중단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가장 먼저 북한이 성지순례를 포기할 수 없다. 천태종 역시 어렵사리 마련된 성지순례가 더더욱 포기할 수 없는 성지이자 포교의 장이다. 게다가 통일부는 종교의 자유를 막을 이유가 없다. 게다가 영통사 성지순례를 막았다간 성지순례의 물꼬를 튼 천태종 등 불교계로부터 비난을 감수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방문중단 가능성은 낮아

북한 리창덕 문화협력부장은 지난달 “성지 순례사업을 정례화 해 남측 신자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도록 하려고 하는데 남측에서는 이를 부담스러워하고 있다. 이건 종교적인 문제인데 남측은 자꾸만 관광문제와 결부시키려 한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선죽교와 고려역사박물관 관람이 편법 관광이라는 지적과 관련해 “당초 영통사에 한정하려 했으나 남에서 먼 길을 와 개성을 보고 싶다는데 안 들어 줄 수 없지 않나. 점심 식사를 하는 곳과 선죽교는 100m 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이걸 개성관광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주장했다. 리 부장은 당시 “성지순례를 문제삼는다면 이산가족 상봉 등에도 영향이 갈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북한의 성지순례 사업추진의지는 확고했다. 영통사 성지순례 문제는 북측이 적극 찬성하고 있는 반면 남측은 방문을 제한하고 있는 형국이다.

천태종의 개성 영통사 성지순례는 종교적 차원의 순례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남북 교류에 있어 또 하나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개성관광차원에서 바라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영통사 성지 순례는 단순히 성지순례를 빙자한 관광이 아니다. 순수한 종교행사인 만큼 영통사 방문이 중단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개성 시내 선죽교 등 한 두 곳 더 둘러본다고 그 것을 ‘관광성 성지순례’로 몰아붙여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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