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의해 납치된 인질 가운데 여성 2명의 석방 소식이 오락가락하고 있다.

처음에 석방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한시름 놓였다. 이들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시들고 있다는 느낌이 있던 차에 지난 8일 오전 남북이 동시에 “오는 28∼3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한다”고 발표한 순간 이젠 아예 국민의 뇌리에서 그들의 존재 사실이 잊혀질 것이라고 예단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언론이 2차 정상회담 개최설을 보도했던 터라 크게 새로울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7년만의 남북 정상의 만남은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에서 국민의 눈을 돌리기에 충분했다.

예상대로 모든 언론은 연일 남북정상회담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한순간에 사회적 이슈가 바뀐 것이다.

최근 국민적 주관심사는 단연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였다.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의 머릿기사가 피랍사태 관련으로 꾸며졌다.

그도 그럴 것이 한두명이 납치됐어도 난리인데 무려 23명이 탈레반에게 잡혔고 그 중 2명이 잇따라 살해됐다.

점점 잊혀지는 피랍사태

국민은 경악했고 분을 참지 못한 일부는 인질로 잡힌 봉사단과 이들이 다니는 한 교회에 비난화살을 돌렸다.

특히 피랍자 중 일부가 인천국제공항에 붙은 ‘아프가니스탄 여행자제’ 경고표지 앞에서 활짝 웃는 모습으로 기념 촬영한 사진이 공개되면서 “자업자득”이라고 비아냥댔다. 이런 분위기에서 피랍자 가족들은 죄인인양 머리를 떨구어야 했다.

그러나 공개된 그들의 초췌한 모습의 동영상과 도움을 호소하는 어눌한 전화통화 음성은 전투병을 파병해 보복을 해야한다는 극단적인 해결책이 제시될 정도의 ‘싸구려’ 동족애를 유발하는 요인이 됐다.

이유야 어떠하든 이런 국민적 관심이 오로지 안전한 석방을 갈망하는 인질 가족들에게는 큰 희망이자 위안이고 힘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일이 다 그렇듯이 시간이 흐를수록 그들의 생사여부에 대한 국민과 언론의 관심이 서서히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다.

피랍 20일이 넘어선 후부터 아프가니스탄 소식은 신문을 제작하거나 뉴스를 편성하기 위한 ‘꾸미’로 전락했다.

이런 심드렁한 상황을 지켜본 피랍자 가족들의 낙담과 섭섭함은 그들이 굳이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느닷없이 등장한 남북정상회담 뉴스는 피랍사태를 아예 국민의 관심에서 밀쳐냈다.

피랍자 가족들 입장에서는 이 뉴스가 세상 무엇보다 야속할 것이다. 이제 그들은 ‘그나마 심적 동지가 사라졌다’는 현실 앞에서 망각을 강요하는 ‘시간의 힘’을 원망하면서도 드러내놓고 국민에게 서운함을 표현하지 못 할 처지다.

남북정상회담과 아프간 피랍사태만을 볼 때 피랍자 가족들은 남북정상회담의 피해자가 된 셈이다.

이같은 ‘양은냄비’ 분위기는 비단 이번뿐만이 아니다.

지난 5월15일 아프리카 북동부 소말리아 해역에서 새우잡이 원양어선 마부노 1·2호가 무장해적들에게 납치됐다.

오늘로 정확히 91일째다. 선장 한석호씨와 선원 이송렬·조문갑·양칠태씨가 중국 등의 선원 20명과 함께 붙잡혀 있다. 그동안 호들갑을 떨었던 국민적 관심은 지금 어떠한가.

생명이 걸린 일인데 야속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게 아니냐고 어줍잖은 핑계를 대기엔 그들의 가족에게 너무 미안하지 않은가.

반짝 관심 되풀이 말아야

지난 2월27일 아프가니스탄에서 자살폭탄테러로 다산부대 윤장호 하사가 사망하자 비로소 2002년 6월29일 남북 함정간 벌어진 서해교전 희생자들에게 ‘반짝 관심’이 모아졌다.

그러나 그때뿐이다. 5년이 흐른 지금까지 매년 기념식이 열리지만 참전병사와 유족, 가족만의 조촐한 행사가 되고 있다. “내 아들아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쳤느냐”는 숨진 한 병사의 어머니의 절규를 국민 중 얼마만큼이나 내일처럼 느낄 수 있는지 궁금하다.

정부와 사회의 무관심으로 인해 이들이 안을 수밖에 없는 서러움과 울분은 죽기 생전 치료될 수 없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피랍사태는 국민의 관심을 계속 필요로 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도 중요하지만 정상회담의 의제는 남북간 조율이 얼마든지 가능하고 당장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고 해서 국민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이미 애꿎은 인질 2명이 목숨을 잃었고 나머지 21명의 생사여탈권을 탈레반이 쥐고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국민의 무관심은 이들을 사지로 내모는 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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