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김동진 < 기획취재부장 >

‘학력(學歷)’의 사전적 의미는 ‘수학(修學)한 이력’이다.

즉, 얼마나 배웠느냐다. 통상 사회적으론 어느 단계의 학교까지 졸업했느냐로 인식된다. ‘학력(學力)’은 한글로는 ‘학력(學歷)’과 똑같이 표기되지만 그 의미는 분명히 구분된다.

사전적으론 ‘학문상의 실력’ 또는 ‘학습으로 쌓은 능력의 정도’를 뜻하는 말로, 어느 단계의 학교까지 다녔느냐가 아닌 어느 정도의 실력을 쌓았느냐로 평가된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선 學歷과 學力이 동일시되는 그릇된 시각이 팽배하다.

명문대학을 나오면 그만큼 명민하고 학식이 높은 사람으로 격상되는 반면 초등학교나 중학교 정도만 졸업한 사람은 무식하고 무지한 사람으로 격하된다.

學歷과 學力을 구분하지 못하는 사회적 모순이자 병폐며 편견이자 고착화된 오류다. 하지만 알고보면 세계적으로 성공의 입지를 쌓은 사람 중엔 의외로 내세울만한 學歷이 없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들은 學歷이 개인의 성공 또는 능력을 재단하는 잣대가 아니라는 점을 반증하고 있다. 그러하기에 그들 스스로는 별로 내세울만한 學歷이 없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발명왕 에디슨(Thomas Alba Edison)은 초등학교 중퇴가 최종 學歷이고,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음악가의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도 중학교 중퇴가 學歷의 전부다.

미국 굴지의 자동차회사인 포드사를 창립한 ‘자동차왕’ 포드(Henry Ford) 또한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 學歷이며, ‘내쇼날(national)’이란 상표로 유명한 일본 마쓰시다전기회사를 창립한 마쓰시다 고노스케 역시 초등학교를 중퇴한 사람이다. 한국기업이 경영모델로 삼고 있는 일본의 혼다그룹을 창립한 혼다 소이치로는 아예 정규학교를 다닌 적이 없는 無學歷이다.

이들처럼 學歷보다 學力을 인정받는 사람들은 국내에도 많다.

박정희 대통령이 하루는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막걸리를 마시며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 “소학교 밖에 안 나온 분이 어떻게 우리나라 최고 명문을 나온 직원들을 그렇게 잘 다루십니까”라고 물었다고 한다.

정 회장은 박 대통령의 물음에 언짢다는 표정을 짓더니 “저도 ‘신문(新聞)대학’을 나왔습니다”라며 말을 이었다.

“저는 소학교 시절부터 지금까지 신문을 누구보다 열심히 읽었습니다. 정치, 사회, 문화면은 물론이고 광고까지 다 읽었지요. 신문에는 문필가, 철학자, 경제학자, 종교학자 같은 유명인사들의 글이 매일 실리지 않습니까? 그분들이 다 나의 스승입니다. 실력으로 따지자면 명문대학보다 신문대학 출신이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죠”라는 게 정 회장의 설명이었다.
‘學歷의 허상(虛像)’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일화다.

신한금융지주그룹 라응찬 회장은 한국금융계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인물로 평가받는 ‘상고 신화’의 주역이다.

선린상고 야간부를 졸업한 뒤 농업은행에 입사하며 금융계에 첫발을 내디딘 라 회장은 대구은행을 거쳐 신한은행의 전신인 제일투자금융 설립을 주도하고 신한은행으로 변신한 뒤 은행장에 오르며 상고 신화를 일궈갔다.

실력이나 능력보다 위조된 학력으로 사회적 위치에 오른 사람이 비판받는 것은 마땅하지만, 객관적 검증과 평가를 통해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과는 구별돼야 한다.

심형래씨가 고려대를 졸업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거나, 만화가 이현세씨가 서라벌대를 다닌 적이 없는 고졸이라고 밝힌 것이나, 굿모닝팝스 진행자인 이지영씨가 사실은 유학파가 아닌 고졸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해서 이들의 능력을 평가절하하거나 격하해선 안된다.

물론 학력을 속인 것은 비난받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평생 쌓아온 사회적 명성과 능력까지 위조된 것이라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그들의 학력 위조를 변론하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이 그럴 수 밖에 없었던 ‘학벌지상주의’의 구조적 병폐를 야기한 우리 사회에 대한 비난과 각성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서울대를 나오고 외국 유학을 다녀온 사람과,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독학으로 실력을 갖춘 사람을 學歷으로만 차별해선 안된다는 말이다.

객관적 능력 검증을 거쳐 확인된 것들만을 갖고 평가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구축될 때 우리 사회에서 학력위조 또는 학벌지상주의라는 말이 사라질 수 있다고 단언한다.

學歷이 아닌, 學力을 갖춘 사람이 인정받고 대우받는 풍토가 한국사회의 성장과 발전을 견인하는 동력임을 간과해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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