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이름’. 주로 일제 강점기나 한국전쟁 당시를 현실적으로 묘사, 우리 민족의 애환을 그려내고 성찰을 던져주는 재미작가 김은국님의 작품이다.

김 작가는 스스로 목도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우리 민족의 불행한 과거를 배경으로, 역사적 실체 조명과 우리 민족의 절박한 고뇌를 작품을 통해 발현, 도스트예프스키와 알베르 카뮈의 전통을 잇는 세계적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이름을 드러내 항일운동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가슴으로부터 저항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조국의 광복을 위해 무기를 들고 일본과 맞서 싸우지 못했지만, 태극기를 가슴에 품고 대중을 이끌며 독립운동의 선봉에 서지도 못했지만 가슴으로 울고 눈빛으로 처절히 싸웠던 이들이다.

망각에 갇힌 이름들

특히 일제가 우리 말과 글을 찬탈, 개인의 정체성인 이름마저 빼앗겼던 절망과 공분을 통해 자괴하거나 비관하기보다 냉철한 자기반성과 성장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 조국이 35년 동안 일제의 유린에서 벗어나 내 이름을 되찾은 것은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 안중근 의사, 김좌진 장군, 안창호 선생 등 이름난 독립운동가들만의 헌신과 희생도 큰 몫을 했지만 이름없는 수많은 백성들의 정신적 저항과 참여가 기조가 됐음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그렇게 이름없이 스러져간 숱한 민초의 고결한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유명(有名)한 독립운동가들을 추모하고 기념하는 행사는 해마다 많은 사람들의 회고와 계승으로 그 빛을 이어가고 있지만….

또 하나의 처절하고 불행한 역사인 한국전쟁 속에서도 이름없는 이들의 숭고한 희생은 전장(戰場)의 혈골(血骨)로 아직도 남아 있다.

군번이나 계급도 없이 조국의 부름을 받고 적의 총탄에 산화한 학도의용군을 비롯해 이 땅의 젊은이들 가운데 무명(無名)의 넋으로 묻힌 참전용사들을 우리는 지금 기억하고 있는가.

한국전쟁의 영웅 백선엽 대령도 무명용사들의 고귀한 죽음이 없었다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을 것이라 단언한다.

오직 조국을 지키겠다는 생각 하나로 수류탄을 가슴에 안고 적의 탱크로 육탄돌격한 이들, 한 사람의 피란민을 구하기 위해 수십발의 총탄을 가슴에 맞고도 끝내 기관총을 붙든 손을 놓지 않았던 용사들, 적의 진격을 몇 초라도 막겠다며 맨 손으로 적진에 뛰어든 무명용사들.
내 조국도 아닌, 오직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겠다는 사명감으로 이국(異國)의 흙 속에 영육(靈肉)을 묻은 세계 16개 국가의 참전용사들 가운데에도 무명용사가 적지 않다.

적의 총탄에 저항할 힘도 없이 죽어간 민간인들도 무명용사나 다름없다.  

그 정확한 수(數)조차 알지 못하는 무명용사들을 추모하는 행사가 해마다 열리긴 하지만 세인들은 무관심으로 간과(看過)할 뿐이니, 그들의 영혼에 평안한 휴식을 허락지 못함이 당연하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부여받고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이 이름이다.

이름은 ‘존재의 인식표’다.

그 존재가 실재하든 상상적인 것이든 그 대상을 일컫는 고유한 가치다.

우리는 그대들을 기억하리라

종(種)이나 군(群), 계층과 집단 등 포괄적 개념 속에서 독립적 지위를 갖게 되고, 이를 유지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노벨상이나 막사이사이상, 세종대왕상, 이영민 타격상, 최은희 여기자상, 이상 문학상, 안창호상 등 때론 상(賞)의 앞머리에 붙어 명예의 표상이 되기도 한다.

김대두, 한보현, 유영철, 신창원 등 듣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이름도 있다.

김철수, 박보람, 이순애, 최미라 등 우리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도 이름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이름을 잃어버린 사람들.

상실된 존재와 유리(遊離)하는 영혼일지언정 우리 나라와 우리 겨레의 수호자인 그들을 기억하자.

그들을 짓눌러온 무명(無名)의 영(影)을 걷어 이제 그들에게도 이름을 허락하자.

그들이 명명(命名)의 감격으로 너울너울 춤추고 영혼의 해방으로 유희(遊戱)할 수 있도록 자랑스런 우리의 선배로 역사에 기록하자. 

이 땅의 가장 존귀한 이름으로, 그들이 소망하고 간구했던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무명인(無名人),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위대한 이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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