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거리 시장에 갔다.

메밀칼국수를 쓸어 파는 곳이 있다해서 시골 가는 길 노모생각에 들른 것이다. 분주한 찻길을 건너 이곳에 서면 곧 비무장지대가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좁은 길에 들어서자마자 모두 세상의 시간을 벗는다.

느린 진양조에 발을 맞추고 무장 해제된 병사처럼 곳곳을 느릿느릿 살피며 걷는 것이다.

나도 그렇게 부초처럼 인파에 실려 한참을 기웃거리며 걸었다.

명절전이라 모처럼 시장은 활기에 넘쳐있다. 아낙들의 초라한 좌판 위로, 그곳을 지나는 촌부들의 주름진 얼굴위로도 맑은 햇살은 아무렇지도 않게 가득 넘실거렸다.

그러고 보니 어느새 좁은 난장 길은 가을일색이다.

창 같은 모습으로 날을 세우고 서 있는 푸른 토란줄기에 연초록 속살을 드러낸 고구마줄기, 산 냄새가 훅 번져 나올 듯한 각종 잡 버섯, 붉은 대추와 소복소복 탐스런 알밤무더기….

거기서 김 선배를 만났다. 내가 찾던 국수 집 앞이었다.

선배네 집은 바로 국수집 뒤켠이었는데 평생 이곳을 떠나지 않고 살고 있다 했다.

요즘 작은 용달 트럭을 하나 구입해 장 물건 배달해주는 심부름꾼 노릇을 하는데 그 일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다며 호방하게 웃고 떠든다.

그래서일까? 정년퇴직한지가 벌써 수년이 흐른 초로의 노인이건만 내 눈엔 여전히 선배는 내 신입시절에 본 건장한 청년의 모습이었다.

내 손을 잡아 이끌고 숯 가게에 들러 종이커피를 마시고 과일 집에 가서는 몇 송이 포도를 씻으면서, “텔레비전에 맨날 나오는 김호성 아나운서 알지?”하며 선배는 너스레를 떠는데 사람들은 석교동 터줏대감 기세에 밀려 모두가 환하게 웃으며 그렇다고 한다.

나는 속으로 “매일은 무슨? 일주일에 한번 나올까 말까에, 뒷방 중늙은이 아나운서 알기나 할까”하며 빙그레 웃으며 그들 속으로 갔다.

선배 덕인지 직접 반죽해 쓸어 파는 생 칼국수는 한 보따리에 5천원도 안됐다. 선배는 자기 때문에 도매가격으로 파는 거라 했고 할머니는 원래 싸니까 자주 오라 했다. 마치 60년대 영화 셋트장 같은 오래된 주막에서는 탁주가 대포한잔으로 500원이었는데 안주는 공짜였다.

숯가게 할아버지는 “우리아들도 방송국에 다니는데”하며 ‘참숯목초액’ 한 병을 기어코 내게 안긴다.

그러며 작은 목소리로 내 귀에 대고, “이게 무좀에는 직효거든? 피부과 의사들도 사갚하는 바람에 내가 큰소리로 웃었다. 잠시였지만 나는 그곳에 머물며 참 행복했다.

넘치는 에너지로 온몸이 상기되고 유쾌했다. 그리고 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지를 생각했다.

사람은 왜 사람들 속에 섞여 부대끼며 살아야 하는지, 선거 때만 되면 모든 후보들이 제일먼저 재래시장을 찾아오고 한결같이 재래시장 활성화를 외치는 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 나는 올 추석에는 꼭 재래시장 상품권을 사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의기 소침해 있는 몇몇 내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것이다.

그러면 그들도 진양조 장단에 맞추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걸음으로 도심 속 비무장지대를 거닐 것이다.

걸으며 어느 노랫말 가사처럼 다짐 할 것이다.

“이제 다시 시작이다. 젊은 날의 꿈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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