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마가 할퀴고 간 충북지역 그후

수해의 그림자가 지나간지 한 달이 넘었다. 그러나 이재민들은 아직도 지난 여름 악몽을 떨쳐내지 못하고 있다.

지난 7~8월 발생한 집중호우로 충북지역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에 따라 단양군을 비롯한 제천·진천·음성·괴산 등 충북도내 5개 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충북도는 수해복구비로 1천958억7천400만원을 확정됐다. 시·군별 피해복구비는 △단양군 740억600만원 △진천군 375억2천800만원 △음성군 221억400만원 △제천시 172억500만원 △괴산군 167억4천200만원 △충주시 137억6천만원 △청원군 89억1천300만원 △증평군 27억4천300만원 △청주시 7억8천200만원 △옥천군 7억4천300만원 △보은군 6억2천700만원 등이다.

하지만 피해지역 주민들의 마음은 정부나 자치단체가 느끼는 것과 사뭇 다르다. 복구예산이 확정되고 응급복구가 마무리됐지만 생계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이제 곧 태풍의 계절이다. 장마 피해보다 태풍 피해가 몇배 컸던 최근의 수해 양상을 생각하면 초가을까지 마음을 놓을 수 없다. 집중호우로 인한 수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상습 수해지와 수해 위험지역에 대한 사전 대비책을 강구해야한다. 충청매일는 이에 따라 제천·단양·진천·음성·괴산 등 특별재난지역의 현지상황을 기획특집으로 마련, 보도한다.     

단양군은 지난 7월 두 차례에 걸쳐 쏟아진 집중호우로 350억원의 피해를 입었다. 영춘면 일원은 수해복구 40여 일을 맞았지만 아직 응급복구 상태에 그치고 있다.

취재기자가 찾은 지난 9일 영춘면 곳곳에는 당시의 처참한 모습이 여전했다. 영춘면 소재지에서 동대재를 넘어 수해지역인 용진리에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산사태로 뻘겋게 속살을 드러낸 처참한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은 용진리에서 동대1,2리를 거쳐 의풍리까지 20여 곳이나 됐다.

계곡이나 소하천도 성한 곳이 없었다. 산사태로 밀려든 돌과 바위는 논과 밭을 구분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집안 마당까지 흙과 바위가 넘쳐나고 있었다. 아쉬운 대로 군이 나서 응급복구를 마쳤으나 한 곳에 쌓여 있는 큰 바위들은 당시의 처참한 모습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었다. 인적이 드믄 마을은 마치 골재 장을 연상케 했다.

소와 닭 울음소리가 들려야 할 축사에는 쓰러진 파이프가 들어차 있었고 찢겨진 비닐만 바람에 휘날렸다. 고추밭은 붉은 색의 고추 대신 산에서 밀려 내려온 황토가 가득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듯 물 폭탄을 맞은 지 40여일.

이제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면서 제법 한기까지 느껴지고 있다. 수마는 지나갔지만 수마가 할퀸 상처는 곳곳에 남아 있다. 죽을 고비를 넘긴 농민들은 쓸려나간 전·답과 주택 등을 바라보며 아직도 넋을 놓고 있다. 턱없는 보상비로 절망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잃어버린 집을 새로 짓고 삶의 유일한 수단인 논과 밭을 일으키는 항구복구를 위한 재정부담은 커져만 가고 있다. 피해정도가 심한 영춘 3개리 15세대 30명의 이재민들은 단양군에서 지원한 컨테이너 집에서 힘든 생활을 하고 있다. 군은 지난달 용진3리, 동대1·2리, 의풍리 1, 남천리 등에 15동의 컨테이너 집을 마련해 줬다. 주민들은 항구복구 시기인 내년 상반기까지 이 곳에서 거주해야 한다. 그러나 임시거처로 마련된 컨테이너 집(5.4평)에는 전기온돌 장판이 겨울 난방의 전부다.

수해민들의 시름은 컨테이너 창으로 불어오는 바람 소리 만큼 깊어지고 있다. 하지만 뾰족한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단양지역은 지난달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그러나 사유재산 지원금으로 전파주택 500만원, 반파주택 250만원, 침수주택 100만원이 전부다. 수재민들은 이 같은 지원금으로는 집을 지을 그림조차 그릴 수 없다며 한숨쉬고 있다. 그나마 농경지 복구가 순조롭게 진척돼 위안이 되고 있다.

단양지역 농경지는 지난 비피해로 177.77ha가 유실되거나 매몰됐다. 단양군의 지원을 지원 받아 마을별 공동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다. 군은 또 소하천을 끼고 있는 연속성을 가진 농경지의 경우 복구불능지역으로 판단해 11.67ha에 대해 25억6천100만원의 사업비(국비)를 들여 매입할 방침이다. 단양군은 신속하고 철저한 시공을 통해 완벽한 복구와 주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침을 세우고 재해구호와 복구에 관련된 예산을 조기에 투입할 계획이다. 하지만 농기계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돼 농민들의 시름은 깊어가고 있다.

제천지역에선 지난 7월 내린 집중호우로 70억여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그러나 예산 집행의 절차상 문제로 복구가 늦어지고 있다. 수해가 발생한 지 두 달이 지난 현재까지 공사 발주가 되지 않아 조기 복구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청풍명월국제하키장의 경우 인조잔디구장이 침수돼 건축시설과 소방·전기·통신·기계설비 등 8억8천여만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당초 예정돼 있던 전국 규모의 하키대회와 국제마스터즈 하키대회가 취소됐다. 당연히 지역경기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지난 8일 취재기자가 찾았을 때 하키장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제천시는 현재 기존 시설 수리후 재사용안과 침수된 전기시설·기계시설을 1층과 2층으로 증축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다. 관련부서와 의견을 조율하고 있다.

그러나 예산 집행 절차상 문제로 아직까지 발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시민 L씨는 “하키경기장 수해복구 공사가 빠른 시일내 발주되고 준공돼야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며 “발주가 늦어지는 이유가 뭔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207억여원의 재산피해를 입은 진천지역은 수해복구 한달 여만에 모든 응급복구작업이 대부분 마무리됐다. 진천지역은 지난달 7월28일 내린 집중호우로 진천읍 삼덕리 상·하덕 마을과 초평면 중성리 중성마을을 비롯한 군내 전지역에서 가옥 수십 채와 농경지 수십만 평이 침수됐다. 덕산면 소재지 상가 100여곳도 물에 잠겼다. 도로, 하천, 교량 등 공공 시설도 붕괴되거나 파괴됐다. 피해복구 한 달여가 지난 현재 덕산면 소재지 대부분의 상가들은 악몽을 떨쳐내고 새 삶을 위해 힘겨운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새로운 물품을 구입해 진열하고 수해 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손님들을 맞고 있다. 하지만 집중 호우로 제방 둑이 터지며 논과 집이 물바다로 변한 진천읍 삼덕리 상·하신 마을과 초평면 중성리 중성마을, 문백면 구곡리 일대 주민들의 생활은 난민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매년 수해가 반복되고 있는 초평면 오갑리 석탄마을 26가구의 주민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수해 후 집안을 말끔히 정리하고 생활하고 있지만 매년 비만 오면 수해를 당하다 보니 앞으로 있을 태풍에 또다시 수해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만 시커멓게 타고 있다.

초평면 오갑리 한 주민은 “수해복구가 끝나 정상적인 생활은 하고 있지만 그동안 마을이 상습적으로 침수되는 피해를 당해 비소식만 들리면 항상 마음이 불안하다”며 “관이 완벽한 수방 대책을 세워주기 전에는 두 다리를 펴고 자기는 힘들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 7월14일부터 29일까지 내린 집중호우와 태풍 ‘에위니아’로 괴산지역은 사유·공공시설 피해액이 71억8천420만6천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복구비가 제대로 지원되지 않아 완전복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태풍 ‘에위니아’ 복구 관련 재난 지원금은 9천450만원이 지급됐다.

하지만 집중 호우 관련 복구비는 재난지원금으로 1억3천900만원만 지원돼 전체 복구비의 1%도 채 지원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피해가 많았던 불정·소수·청안면 지역의 경우 유실된 하천 제방과 도로 등 공공시설은 임시방편으로 흙과 잡석으로 응급 복구를 마쳐야 했다.

결국 실시설계가 끝나는 대로 다시 공사를 해야되는 상황이다.

하천제방 유실이 많았던 불정면 세평, 청안면 압항천, 소수면 동진천과 고마천은 현재 흙과 잡석으로 95%의 응급복구를 마쳤다. 그러나 완전 복구는 내년 봄이나 돼야 이뤄질 것으로 보여 다시 집중호우가 내리면 더 큰 피해가 예상되고 있다. 농작물 피해로는 벼, 고추, 인삼, 콩, 옥수수 등이 침수되거나 매몰돼 썩거나 상품가치가 하락해 복구를 아예 포기하는 농가가 많았다. 지원된 재난지원금도 실시설계 등 용역비로 충당돼 실제 복구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이로 인해 괴산지역 피해 현장 역시 응급복구만 마쳐 항구복구는 전무한 상태다.

음성지역도 지난 7월과 8월 300mm이상 내린 집중호우로 인해 유실됐던 소하천 및 공공시설이 응급 복구가 마무리 됐다. 금왕읍 응천의 경우 시간당 30mm의 폭우로 인해 삼형제 저수지가 만수위를 넘어섰다. 금왕읍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합심해 제방을 쌓고 금왕읍 시내로 유입되는 저수지물을 막는 데 사력을 다해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러나 이날 폭우로 음성읍 감우리 소하천을 비롯해 금왕읍 본대리 용수로 등 하천 및 소하천 106건이 유실됐다. 금왕읍 내송리는 산사태와 도로 유실 등 37건 피해를 입었다. 부윤초등학교 담장도 이 때 무너져 내려 학생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취재기자가 음성지역 수해현장을 둘러본 지난 9일 금왕읍 응천은 마대와 석축으로 응급복구돼 평상시와 다름이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평온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항구대책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고 있어 주민들의 불안감은 여전하다.

음성군은 농경지 유실로 피해를 당한 농민들에게 복구자금을 지원했다. 지금은 수확기에 접어든 농작물 현황을 파악하고 있다.

서관석·목성균·강영식·윤규상·심영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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