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가을인갉’
마당에 떨어진 밤을 줍다가 나도 모르게 입에서 새어 나온 말.

‘아! 가을인가. 가을인가 봐…’
노래인지 탄성인지 모를 말이 내내 입가에 맴돈다. 사나운 여름을 인내한 가을은 올해도 이렇게 우리 집 마당 한 켠, 이른 밤이 되어 툭툭 하늘에서 먼저 떨어진다.

밤송이가시에서 툭 튀어나온 노란 밤알은 마치 방금 이발을 마친 내 어린 시절의 상고머리처럼 단정하다.

언덕에 비스듬히 우람한 풍채로 버티고 있는 저 밤나무는 우리 집 초록철망을 건너 반이나 넘게 가지를 늘어뜨리며 서있어 해마다 우리에게 이렇게 가을을 줍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지난밤처럼 바람이 있는 날이면 부지런하신 아버지 새벽 손에 제일 많은 밤이 들려지고 나무 아래 화초밭이나 덤불 속까지 속속 살핀 어머니 손이 그 다음이요 게으른 내게는 곳곳에 널려있는 빈 밤송이만 눈에 띈다.

이곳 피반령 산밤은 달디 달다.
그 달디 단 밤을 아버지는 온전히 우리 몫으로 아끼고 아끼신다.
올해도 자주 오지 않는 우리 아이들 몫까지 아버지의 밤은 오랫동안 김치냉장고에서 주인을 기다릴 것이다.

지난해도 우리는 마당에서만 두 말이나 되는 밤을 주웠다.
해마다 아버지는 산 주인을 불러 그 밤을 꼭 되돌려주신다. 그러면 그 산 주인은 다시 우리에게 쇠경처럼 얼마간의 밤을 나누어주고 아버지는 황송한 듯 그 밤을 받아든다.

그것이 평생을 정직하게 나라의 공복이 되어 사신 노 퇴역 공무원 아버지 식 삶의 방법이다.
우리 집은 병약한 아버지 때문에 늘 가난했지만 내 마당에 떨어진 밤도 함부로 거두어들이지 않는 아버지의 정직함을 보며 배우고 살았다. 그리고 우리가 먹을 장보다 남을 위해 장을 더 많이 담는 어머니의 인정을 보며 살았다.

우리가 우암산 아래 달동네에 살 때도 늘 우리 집은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처럼 이웃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어머니는 항상 우리식구가 먹을 밥보다 훨씬 많은 밥을 지어야했다.

게다가 툭하면 사람을 달고 오는 내 오랜 습성으로 인해 어머니는 늘 분주하셨다.
그러나 그 일을 마치 전생의 업보처럼 어머니는 기꺼이 즐기며 사신다.

지금도 많은 내 친구들은 어머니 표 반찬 몇 가지를 그리며 안부를 건넨다.
가까운 우리의 친지들은 여전히 어머니의 고추장과 된장으로 한해를 난다. 내게 조금이나마 나누는 품성이 있다면 그것은 순전히 부모님이 주신 묵언의 가르침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나눠야 할 것이 꼭 재물이나 인정만은 아니다.
우리의 표정이나 눈길하나가 다 아름다운 보시의 마음인 것이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웃는 얼굴과 따뜻한 말과 좋은 마음과 바라 봄, 그리고 봉사와 양보와 헤아림으로 정리한 ‘무재칠시’라는 가르침이 있다.

그 중 ‘무재칠시’의 으뜸이 ‘화안시’이다. 말 그대로 ‘항상 웃으며 부드럽고 정다운 얼굴로 남을 대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가진 것이 없어도 맘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 할 수 있는 마음이다.

연로한 구순 아버지는 오늘도 ‘부시맨’처럼 웃고 계신다.
그 모습이 손안에 밤을 몇 알 건넬 때는 더욱 환해지는데 아버지의 그 작은 손안에는 세상의 그 어느 산해진미보다도 맛난 아버지표 구수한 밤이 들려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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