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게 취미 에요.”

1960년대 어느 이른 가을.

무심천 둑길을 거닐던 어느 젊은 아베크족.

왠지 어설프고 쑥스러워 몇 발자국앞서가며 걷는 맘보바지의 처녀.

능수버드나무 여린 가지 하나 꺽어 입에 물고 살랑살랑 부는 저녁바람 타고 걷는 그녀 뒤로 더벅머리 총각이 침묵을 가르며 먼저 입을 연다.

“저… 걷는 거 좋아하세요?” 

“걷는 게 취미 에요”

“색깔은 무슨 색 좋아하세요?”

“소라색.” 

그 ‘소라’라는 말이 일본어 인줄도 모르는 처자는 왠지 좀 세련돼 보이는 듯한 어감의 ‘소라’. 소라 색을 좋아한다 했다.

아니면 “음… 하늘색 좋아해요” 그랬다.

정말 걷는 게 취미인 시절이 있었다.

우리가 사춘기 시절 학교에서 돌리던 사인지에도 빠지지 않던 취미란, 거기에 많은 친구들이 ‘걷는 것’이 라고 썼다.

또는 대부분 본인의 실제 취미생활과는 전혀 다른 ‘독서’ ‘음악감상’이라고 했는데 혹여 갑자기 툭 튀어나올지도 모르는 확인 작업에 대비해 몇 권의 양서 제목을 외거나 내용을 파악해놓는 경우도 있었다.

나도 ‘데미안’을 염두에 두며 그 안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 인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하나의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만 한다’ 정도는 파악하고 있어야 했다.
아무튼 그 때 우리는 늘 걸었다.

아니 그저 걷을 수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시민들의 거의 유일한 데이트 장소였던 무심천 둑길.

우리는 걷다가 더러는 그 둑길아래 풀밭에 앉아 해거름 용화사 미륵석불위로 비치는 붉은 석양을 바라보기도 했다.

간밤에 나는 무심천에 갔다.

친구는 둑 아래 말끔한 우레탄 산책로를 따라 걷자고 했다.

다리 아래에서는 학교 축제를 준비하는지 여고생들의 풍물가락이 둥둥 물길을 가른다.

손을 휘 저으며 열심히 오가는 건강시민들.

석 구조물 위에 몇 병의 캔 맥주를 올려놓고 정담을 나누는 소시민들.

그리고 그들의 발자국 아래로 무심히 흐르는 억겁의 물길과 저녁바람에 일렁이는 밤 부들. 억새와 갯버들.

비릿한 강 내음이 좋았다.

내가 그간 틈만 나면 시비를 걸었던 저 수많은 무심천 구조물들조차도 오늘은 마치 고궁의 소품처럼 네온 빛을 받아 반짝였다.

멀리 서문다리 위 구조물은 마치 석양을 등지고 돌아온 ‘노인과 바다’의 거대한 물고기 뼈처럼 서 있는데 나는 그것을 볼 때마다 ‘헤밍웨이’를 꼭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아! 그러고 보니 우리청주시민들은 참 행복하다.

그 행복 속에 무심천이 있다.

인구 65만 명을 거느린 이 도시 위에 이만한 강이 또 있을까.

빌딩 숲 속에서 던지는 낚싯대와 밤낮으로 걷고 뛰고 노래하는 사람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돌 징검다리를 건너는 중년부부의 모습이 정겹다.

강을 건너는 그들 아래로 행복한 도시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SNS 기사보내기
기사제보
저작권자 © 충청매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