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꽃들은 나는 듯 지고 만다.

‘낙화유수’라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꽃도 수해를 입은 셈이다.

본격 여름이 오며 시작된 장맛비는 곧 꽃샘비가 돼 오랫동안 이어지고 있다.

여름 담장 위로 오종종 여물던 한 철 붉은 ‘능소화’도 듬성 넝쿨을 접은 데다 도종환의 순한 ‘접시꽃’도 일찍 물색을 잃고 돌담에 기대 키다리로 서있다. 그 뿐이랴 지천으로 가득했던 개망초 꽃도 올해는 왠지 어수선하며 흰빛을 잃고 있다.

그러고 보면 식물들도 생로병사에 우리처럼 이렇게 자유롭지 못하다.

어찌 보면 재해는 제일 먼저 식물에 찾아온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말없이 억겁의 세월을 버티며 살아왔다.

목이 마르면 마른 대로 또는 물속에 빠져 죽을 것 같은 물난리 속에서도 그들은 그들의 본성인 종족보존을 위해 필사의 노력을 기울였던 것이다.

비거스렁이 저녁녘 물가에 나가 보라. 비록 그들은 세찬 물길에 쓸려 한쪽으로 몸을 뉘고 있을망정 쉽게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온 힘을 다해 뿌리로 처절하게 지탱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일제히 한쪽으로 휩쓸려 누워있는 냇가 들풀들을 보면 왠지 성스러운 마음마저 인다.

우리도 저들처럼 저렇게 온몸을 뉘어 우리를 감싸며 필생의 노력을 기울인 적이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 우중에도 시골집 돌절구에서는 오늘 ‘수련’이 처음으로 화사한 꽃잎을 열었다. 전 같으면 벌써 몇 차례 피고 지고도 남을 시간이었지만 올해는 아주 더디게 내게 왔다.

그만큼 더 반갑고 고마운 재회.

탁한 진흙탕 속에 살지만 잎과 꽃에 한 점의 더러움이 묻어나지 않는, 고뇌 속에서 피어 올린 청정의 상징, 그 많은 비바람을 맞아도 추하게 젖지 않고 환하게 웃고 있는 꽃의 여왕.
연꽃은 그래서 더 더욱 아름답다.

한 송이 그림처럼 맺어있는 수련을 보면 늘 많은 생각들이 교차한다.

어느 유행가 가사처럼 과연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가. 그렇다면 꽃보다 못한 인간들은 누구일까.

사람들은 꽃을 피워 볼 노력도 없이 ‘비에 젖는다. 물이 더럽다’하며 주변 탓만 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가. 하는 것들이다.

그렇다. 꽃들이 사람보다 백배는 아름답다.

그들은 지배하고 싸우기 위해 사람들처럼 그렇게 잔인하지 않다.

사람들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상대를 처참히 배신하지 않는다.

저희들끼리 햇빛과 바람을 얻기 위해 자리다툼은 있지만 사람들처럼 전쟁을 하거나 보복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겸허히 윤회하며 자연으로 돌아간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그들은 틈만 나면 수액을 끌어올려 꽃을 피울 것이다.

아무런 보상도 없이 그들은 오늘도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난다.

그리고 넌지시 우리를 위로한다.

아무리 하찮아 보이는 작은 야생화 몇 포기도. 마을 어귀 큰 느티나무가 견디는 비와 바람의 무게 그대로 그렇게 똑같이 겪으며 꽃을 피운다.

요즘 한창 피어있는 채송화도 그러하고 봉숭아도 그렇다.

세상의 온갖 꽃들은 다 그러한 고난 속에서 무늬를 이루며 그렇게 피어났다. 아무리 비바람 몰아쳐도 그래도 꽃은 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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