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조물주는 위대하다.

만약에 저 푸르른 산야의 녹음방초가 모두 노란색이거나 빨간색이거나 하얀색이거나 하면 이 땅의 사람들은 몇이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 저 예쁜 꽃들이 모두 초록색 일색이라면 또 얼마나 밋밋하고 지루할까.

오늘 나는 초록에 취해 나무늘보처럼 어슬렁어슬렁 들녘을 거닐다 이렇게 바보 같은 상상을 해보았다. 그리하여 다시금 이 자연의 오묘하고 치밀한 과학적 질서에 감탄하며 머리를 조아렸다. 아! 얼마나 고맙고 다행스런 일인가. 저 푸른 녹색위로 조물주는 반짝 반짝 빛나도록 빨간 꽃, 노란 꽃, 흰 꽃을 철따라 조화롭게 피고지게 하셨으니. 게다가 사시사철의 계절과 스물넷 절기에 저리도 다양한 수채화로 변화무쌍한 대형화폭의 하늘까지 주셨으니….
엊그제 심은 모는 벌써 땅내를 맡고 뿌리를 뒤척이며 꿋꿋하게 피어오른다. 쥐똥나무 담장 흰 꽃향기는 마치 아카시아와 라일락을 섞어 놓은 듯 강렬한 유혹의 향을 뿌리는데 사람도 그러하듯이 밤이면 그 밀도가 더 높아져 교교하다. 여전히 올 유월도 이처럼 아름답게 녹색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 빛나는 녹색 속에서 올 유월은 꽃처럼 화사한 새 사람들을 불러 세웠다. 바로 5·31 지방선거의 당선자들이다. 높고 험난한 길을 거쳐 돌아온 그들은 지금 유월의 그늘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다.

한 선승께서 하신 말씀이 떠오른다

‘복을 다 누리지 마라.’

선승은 이번 지방선거를 치르며 덧붙여 이르시기를 “아직 우리 사회는 승리자의 잔치에 열광하지만 패배자의 눈물에는 인색하다.

이번 선거에서 낙선의 쓴잔을 마신 경쟁 후보자들에게도 위로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자. 그래서 이번 선거가 축제와 화합의 한마당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출마자들 개개인이 진정한 축제의 주인공이었음을 기억하게 해주자.

이번 기회를 통해 좀 더 겸허하고 성숙된 당선자의 모습을 보여줬으면 한다.

서울시장선거에 나와서 분패했지만 시종일관 여유 있는 표정으로 서울의 골목을 누빈 테너 임웅균은, 평소 그의 시원한 벨칸토 창법처럼 “선거. 한바탕 축제처럼 치렀지요”하며 호방하게 웃었다. 나는 그런 여유가 좋다.

정말 선거라는 게 그의 말대로 잔치처럼 축제처럼 기쁘게 즐기며 치를 수는 없는 것인지.

이번 선거의 당선자들을, 저 초록이 피워낸 꽃이라면 그들과 한때 맞섰던 사람들은 그 꽃을 넘나들었던 벌과 나비였고 그들을 지지하고 믿고 따라준 유권자들은 바로 뿌리며 줄기와 잎새들이었다.

몸을 뒤채며 수액을 빨아올리고 비바람, 햇살을 받으며 꽃으로 자양분을 보낸 그들의 역할 없이 어찌 꽃과 열매가 돼 지사가 되고 시장·군수가 되고 시의원이 될 수 있었으랴. 또한 그들과 건강한 정책 대결을 펼치며 맞섰던 벌, 나비 없이 어찌 그들이 수정해 꽃으로 피어 날 수 있었으랴.

마치 오늘이 세계환경의 날이다.

사람도 자연이고 환경이듯이 우리들을 대표하는 저들도 자연이고 환경인 것이다. 우리는 아름다운 사람들의 자연을 보고 싶다. 우리가 선발한 저들이 아름다운 지역의 파수꾼 자연환경으로 자리 매김 해 부디 쾌적한 사람 숲에서 편안한 삶을 영위하고 싶다면, 이것도 과욕이 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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