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연휴가 끝났다.

녹색사람들 사이로 녹색비가 내린다. 이 번 비는 감로수같은 달디 단 단비였다. 갈아 엎어놓은 모 낼 논에 단비가 찰랑거린다.

내 손바닥만한 텃밭 푸성귀들도 눈에 띄게 키를 올렸다.

어린 상추를 한 소쿠리 솎아 다듬으며 어머니는 늘 하던 소리를 반복하신다.

“상추는 이렇게 뿌링이 채 솎아 먹는 제기 쌈이 젤 맛있느니라.”

마침 먼 산에서 소쩍새가 울었다.

“소쩍새는 솥이 작아서 제 밥 못 먹고 죽은 며느리가. 시어머니 등쌀에 굶어죽은 며느리가 한이 돼서 우는 소리이니라. 솥 적다! 솥 적다. 하며 울지?”

어머니 표 옛날 이야기는 끝이 없이 이어진다.

“세상에는 젤 듣기 좋은 소리 둘이 있는데. 하나는 자식 입에 밥 들어가는 소리이고 다른 하나는 마른 논에 물들어 가는 소리이니라…”

빗물마저 양식이었던 시절, 무지랭이 논·밭으로 나물이 올라오면 그 것을 반 양식으로 캐먹던 시절, 그 어려웠던 시절 얘기를 또 일 삼아 말씀하신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눈길은 자꾸만 과거로 향한다.

방금 한 말도 곧잘 잊는 팔순 노인이 어찌 초동의 과거사는 그리도 소상히 기억해내는지 마치 과거의 흑백 활동사진을 다시 펼쳐놓은 듯 선연하다.

어머니는 당신의 건재를 마치 과거사 기억하는 일에 걸어 두신 듯 이야기는 이야기를 물고 끝없이 이어지는데 우리들의 가족사를 비롯해 한국 농촌사와 근대화의 역사도 다 들어가 있는 데다 무엇보다도 어머니 세대가 가시면 다시 들을 수 없는 우리지역의 순수한 토박이말이 가득 넘쳐흘러서 어떨 때는 저 소리를 내가 녹음해두지 않으면 영영 없어질텐데 하는 안타까움마저 드는 것이다.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 중,

“여전하그만 그랴”가 있다. 우리 충청도 사람들 모두가 즐겨 쓰는 말이다. 인사 할때도 “여전하시쥬?”하고 묻고, 대답 할때도 여전히 “여전하지유 뭐” 하며 쓰는 정겨운 말.

나는 이 말이 좋다.

이 말은 불가에서 많이 쓰는 ‘여여(如如)하다’라는 말과도 같은 의미로,‘진득허니 제자리에 충만한, 변치 않는 모습’을 일컫는 말이다.

특별한 변화가 없는 한 진득허니 사람 좋기로 유명한 충청도 사람의 기질과도 같아서 더 정이 간다.

하덕규의 노래 중에도 이런 게 있다.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가는 풍경.’

세상 풍경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여여한 모습은 누가 뭐래도 어머니 모습이다. 우리들의 어머니는 늘 그 자리에 계신다. 생전은 물론이고 사후에도 여전히 제자리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이다. 다만 우리가 흔들리며 벗어나 애를 태우며 살 뿐이다.

그래서 자식들은 늘 여여한 어머니 자리를 그리는 ‘불완전 동사’인 것인가.

어버이날인 오늘 산천초목도 모두 어버이를 노래한다. 오늘 아침에는 먼 산 소쩍새에 이어 쾌활한 뻐꾸기도 높은 목청을 돋우며 한몫을 한다.

뻐꾸기 이렇게 우니 이제 곧 어머니 분첩 같은 고운 송홧가루 천지간에 휘날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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