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릉도원이 따로 없다. 들 창가에 핀 돌배나무 꽃이 간밤에는 달빛을 받아 더욱 교교 했다.

‘이화에 월백하고…’하는 옛 시조가락 한 자락이 아니어도 좋다. 저절로 배꽃은 하얗게 은세계를 이루며 산을 받들고 있다. 그리고 저편 붉디붉은 복사꽃무리. 열매 맺지 않아도 그들은 이미 제 몫을 다했다.

사월은 꽃 달이다. 이 땅에 피는 꽃의 반 이상이 4월에 피고 진다. 발 아래에서 머리끝까지 어디를 둘러봐도 지천으로 꽃이 맺혀있다. 그리고 그 속에 꽃보다 아름다운 사월의 신부가 있다.

지난 주말에도 나는 여지없이 예식장 순례 길에 나섰다. 길일을 놓치지 않으려는 우리들의 오랜 전통이 사월의 이 땅을 거대한 예식장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 덕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결혼서약 같은 것을 다시 해봤을 것이다.

‘처음처럼’의 마음은 얼마나 변질되었는가. 아니면 어떤 마음가짐의 변화가 필요한 것인가. 하며 속으로 묻고 또 물었을 것이다.

세상의 인연 중에 이 혼인의 인연보다 소중한 것이 또 있을까. 그리고 그 혼인의 의식은 또 얼마나 가슴 벅차고 중요한 것인가.

그러나 우리의 결혼식은 여전히 국적도 없고 의식도 없는 천편일률의 급조된 초 간편 행사로 대부분 치뤄진다. 참 밋밋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요즘 결혼식장 풍속도중 가장 못 마땅한 모습 중 하나는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진, 식장에서의 신랑신부 다루기 모습이다. 만세삼창에 팔굽혀펴기까지는 그런대로 애교로 봐 줄만한데 그 이상의 갖가지 해괴한 일이 다 벌어진다.

얼마간의 부조금을 식권과 곧바로 마주 교환하는 일도 썩 내키지 않는 일이다. 어떤 예식장은 무슨 개업 집 이벤트인양 폭죽에 팡파르를 울리고 중간중간 코드뮤직까지 깔아가며 중계하듯 식을 이끌어가기도 한다. 이러한 예식장 측의 일방적인 프로그램 진행도 따지고 보면 무지막지한 주최측의 횡포인 셈이다.

그 외 말로는 다 할 수 없는 한국 결혼의 현주소. 언제까지 우리는 이 주소로 살아야할까.

대부분 사람들은 결혼 전 한번쯤은 그렇게 맘먹는다.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 할텐데…. 그러다가 결국은 시간에 좇기고 이런저런 이유로 그 대열에 묻어 흘러간다.그래서 나는 결혼을 치러야하는 이 땅의 많은 예비 신랑신부에게 말하고 싶다.

차라리 우리가 내 결혼식의 연출자가 되 보는 것은 어떨까.

지난해 이맘때 즈음 나는 참으로 아름다운 결혼식에 초대됐다. 신랑은 화가 답게 청첩장을 손수 그려 판화로 박았는데. ‘꽃피고 새우는 봄날엷라는 제목의 예쁜 판화그림에, 안팎에는 주소에서 약도까지 그림과 함께 앙증맞게 꾸며졌다. 그들의 초대장이 훌륭한 한 폭의 판화 그림이 된 것이다. 문의문화재 단지에서의 그들의 결혼식은 전통혼례의 형식을 취했으나 세상에 둘도 없는 독특한 프로그램의 우리 표 혼례였다.

한국식 정원에 차려진 풍성한 떡과 고기와 국수는 달디 달았으며 전통 다도로 빚은 우리차도 마음껏 마셨다.

창과 국악가요로 꾸며진 흥겨운 축가에 맞춰 신랑은 덩실덩실 우리 춤을 추었다.

나도 지인 들과 함께 모처럼 잔치 같은 잔치 상을 받고 다사로운 봄빛에,구수한 동동주에 얼큰 취해 오랫동안 대청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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