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는 선천적으로 타고난 장애인이 있는가 하면 각종 질병과 교통사고 등으로 후천적 장애인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현대인들은 후천적 장애인의 가능성이 높은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를 ‘예비 장애인’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려보이지 않는다.

우리 인체는 어느 한 부위가 결함이 생기면 다른 부위가 발달하는 보상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장애인들이 범인(凡人)보다 출중한 사례는 많다.

지난 2001년 1월에 작고한 운보 김기창 화백은 청각장애를 딛고 60여 년 간 한국화단을 대표하는 화가로서 전통과 현대적인 기법을 결합시켜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또 신체의 장애로 발(족화)·입(구화)으로 그림을 그리는 후천적 재능을 계발한 사람, 눈 한쪽이 없는 이스라엘 영웅 다얀, 말을 더듬었던 서머세트 모옴 같은 세계적인 대문호를 들 수 있다.

1986년 한국을 찾은 장애인의 영웅 릭 핸슨이 휠체어를 타고 부산∼임진각까지 550㎞를 종단하며 100만 장애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며 “한국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바로잡기 위해 방문했다”고 말한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시인 호머는 시각장애인인 것에 대해 만족하고 죽어갔으며 만년에 실명한 사르트르는 “나는 읽을 수도 쓸 수도 없었으나 이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새 천지를 보고 있다. 더 일찍 실명했더라면 하는 생각마저 든다.”는 말을 남겼다.

시력을 잃고도 이 같은 희망의 메시지를 내놓는 호머의 ‘웅변’은 우리가 새겨볼 대목이다.

아름다운 선율을 들을 수 없었던 베토벤 역시 청력 대신 천재적인 음악인으로 살 수 있는 재능을 보상받은 사람이다.

2004년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배우 홍성민씨는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한 그는 점자수업·컴퓨터수업·보행훈련을 마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홍씨는“마음에도 눈이 있다”며 제2의 연기자 길을 걷고 있다.

홍씨처럼 비록 몸은 불편하지만 주변으로 차별과 동정을 거부하고 보통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더 건전한 생각을 하고 더 멋진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장애인과 관련한 어두운 사건도 없지 않았다. 2001년 제천시 보건소장인사에서 이모씨(45)의 탈락과 관련, 제천지역은 물론 전국 장애인단체가 장애인차별이라며 반발하는 등 일파만파로 확산됐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시 이 사건은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접수 1번’으로 주목을 받았다. 최근에는 진천에서 한마을 주민들이 여성 장애인을 성폭행한 어이없는 사건이 발생, 경찰이 수사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이처럼 우리사회는 아직도 장애인을 결격인간으로 소외시키고 약자로서 동정하며 성폭행 대상으로 삼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은 우리나라가 전형적인 단극상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20일은 26회 장애인 날이었다.

어제 하루동안 장애인을 위한 행사가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렸다.

장애인의 날 행사도 중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장애인을 바라보는 비뚤어진 ‘편견’을 고치는 일이다. 우리 모두가 예비장애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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