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살에 시집을 오니 꼬마신랑의 나이는 14세였다. 철없는 신랑은 색시의 방 근처에서 기웃기웃거리다 색시와 마주치면 도망가곤 했다. 2년 가까이 색시와 숨바꼭질을 하더니 색시와 한 방에서 자도 되는 줄 비로소 알기 시작했다. 그래서 첫아이를 17세에 낳았다. 그 뒤로 여덟이나 아이를 낳았다. 그 꼬마신랑은 오래 전에 돌아가고 할머니의 자식은 87세 된 큰아들부터 모두 살아있다. 그런데 막내아들이 6·25전쟁때 월북했다. 이후 할머니와의 대화 내용이 엽기 개그 수준이어서 그 내용을 엮어 보겠다.

필자 : 할머니 연세가 몇이세요?

할머니 : 너무 많지~. 104살이니까.

필자 : 자식은 얼마나 두셨어요?

할머니 : 여덟이야 그것도 너무 많지?

필자 : 다 살아있나요?

할머니 : 막내가 월북해서 뒈졌는지 살았는지 몰라. (눈물이 글썽인다. 모두 숙연해졌다.)

필자 : 속 썩일 일 많은데 왜 그렇게 애를 많이 낳았어요.

할머니 : 그걸 왜 나한테 물어?

필자 : 그럼 누구한테 물어봐요?

할머니 : 할아버지한테 물어봐야지! (이말 한마디에 폭소가 터졌다.)

할머니 : 그런데 선상님은 몇이나 두셨어?

필자 : 전 아들 하나밖에 없어요.

할머니 : 아이구 저런…. 한번 밖에 못했어? (이 말에 또 한번 웃었다.)

필자 : 그럼 할머니는 여덟 번이나 했어요? (이번엔 할머니도 크게 웃는다.)

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몰라도 일부러 웃기려고 질문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어둡고 칙칙하게 느껴지는 할머니의 방에서 폭소가 터져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그 웃음 덕택에 방안이 환해지고 할머니 얼굴의 그늘도 걷혔다. 100살이 넘은 할머니는 연세에 비해 인지능력은 문제가 없었으나 외부활동을 하기 어려워 방에서만 지내게 됐다.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마치 무인도에 혼자 살아남아 버티다가 체념한 생존자의 모습이었다. 15세에 결혼해 34세에 손자를 얻어 할머니가 된지 7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녀는 70년 동안 ‘노인’으로 살아야만 했다. 처음엔 며느리를 부릴 수 있었겠지만 그 며느리도 먼저 세상을 뜨고, 어쩌다 합방하면 애가 들어서게 한 할아버지도 세상을 떠 지금은 손주 며느리의 부양를 받고 있다.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오래 살기를 원한다. 그러니 3대 거짓말 중 첫 번째가 죽고싶다는 거짓말이 아니었던가. 얼마 전 필자가 운영하는 노인대학에서 학생회장을 뽑았는데 당선된 회장어르신의 인사말에서 오래살려는 인간의 마음을 재확인했다. “제 손자가 과학자가 되면 사람이 안 죽는 약을 개발한다고 합니다. 그 약을 노인대학생에게 나눠 드리겠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다. 일 순간에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며 좋아하는 모습에 필자는 황당했다. 연세들이 많아 오늘 돌아가셔도 원통할 것 같아 보이지 않는 노인으로 내 눈에 비춰졌는데 이렇게 죽음을 부정하고 있다니! 인생의 절반 이상을 노인으로 살아가야함을 몰라서 그러는 것인가. 이렇게 사람이 오래살면 어떻게 될까.

2004년도 말 통계에 충북에 100살이 넘는 노인의 수는 주민등록 상 73명으로 돼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25명 정도가 100살이 넘었고 그 25명도 독립생활이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한다. 부양자의 손에 의해 겨우 생활을 하는데 그것도 자식이 아닌 손자에 의해서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이다 보니 오래사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이젠 오래살려고 죽음을 부정하지 말고 어떻게 스스로 잘 살아야 할지를 학습해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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